‘인생 예술’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도를 닦는 것’이라고 나는 답하고 싶다. 내가 아는 그 실례 하나 들어보리라.
나에게는 괴짜 형님이 한 분 있었다.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인 형님은 일정시대 평안북도 신의주 고보를 다니다 말고 중퇴, 도 닦는 길에 나서 팔도강산 방방곡곡으로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셨다. 깊은 산속 굴에 들어가 단식이나 생식을 하면서 여러 날 여러 밤 묵상에 잠기기도 하고 방랑하는 김삿갓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기도 했다.
그가 처방하는 ‘약’이래야 별것도 아니었다. 폐병(폐결핵) 또는 해수병 환자에게는 솔잎을 뜯어다 꿀물에 담가 보름쯤 뒀다가 그 사이다 같은 물을 공복에 마시라고 했다. 이런 약을 써서 병이 낫는 사람도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가 병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고 환자 자신이 고치는 것이라 했다. 그가 처방하는 약재의 효험을 믿는 사람에겐 약효가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 몸은 자연치유가 가능한 자구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베이면 피가 좀 나다 저절로 아물지 않느냐며 그 어떤 의사도 그 어느 누구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고 환자 스스로 고치도록 좀 도와줄 수 있을 뿐이라 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하루는 형님보고 ‘축지법’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형님은 나를 조그만 시냇가로 데리고 갔다. 냇물 폭이 2미터도 넘어 보였다.
“태상아, 너 이 냇물 건너뛸 수 있겠니?”
못한다고 대답하자 형님이 나를 데리고 같이 냇가로부터 뒷걸음 하다 보니 냇물 폭이 시각적으로 점점 좁혀져 갔다. 그러다 그 폭이 완전히 없어진 듯 물줄기가 하나의 은빛 흰 선처럼 보이는 지점까지 가서 “너 저 선은 뛰어넘을 수 있지?” 또 형님이 물으셨다. ‘물론’이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럼 됐다. 네 머릿속에 저 하얀 선을 고정시키고 그 선만 보면서 물가로 달려가다 뛰어넘거라. 물가에 가까이 갈 때 네 눈에 냇물 폭이 다시 넓어지는 것 보지 말고 네 머릿속에 박힌 그 선만 보거라.”
이렇게 일러주셨지만 그 당시에는 형님의 말씀이 얼토당토않은 엉터리 같아 나는 형님이 시키는 대로 해보지도 않았다. 훗날에 와서 생각해보니 형님께서 하나의 메타포로 빗대어 말씀하셨던 것 같아 수긍할 수 있을 법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한 가지 정말 이상한 것은 6.25 한국동란이 나기 꼭 일 년 전에 형님이 집에 들러 일 년 후에 큰 난리가 날 테니 양식을 좀 미리 땅속에 묻어두라고 했다.
어머니는 ‘미친놈 미친 소리 한다’고 형을 나무라셨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양식을 준비했다가 전쟁 때 양식 걱정을 안 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불가사의한 것은 우리 가족이 1972년 한국을 떠나 영국에 가 살다가 어느 날 밤 꿈에 나는 형님을 보았다. 꿈에서도 생시처럼 온다 간다는 말없이 왔다 가셨다. 그런 꿈을 꾼 다음 날 나는 형님의 부고를 받았다. 아마도 나에게 작별 인사하러 꿈에 나타나셨으리라.
폴란드계 미국 학자 알프레드 코집스키(1879-1950)가 남긴 명언이 있다.
“인생을 쉽게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모든 것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우리가 사고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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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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