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교 시절 KBS 방송국에 한 음악 프로가 있었다. 몇 명이 참가하는 게임으로 음악을 틀어주기 시작하면 참가자 중 누가 스톱! 하면서 어떤 작곡가의 무슨 음악이란 걸 알아 맞추면 이기는 프로이었다.
K 라는 내 친구는 어느 음악이든 첫 소절이 막 시작하면 다른 참석자가 음악 첫 소절을 들을 겨를도 없이 스톱! 하고 나선다. 예를 들자면 “베토벤 작곡 심포니 5번 운명” 하면서 100% 맞추니 게임의 승리를 혼자 독차지하는 꼴이 되어 시청자에게는 그 프로가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그 친구에게 양해를 구해서 출연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당시에 그의 해박한 음악 지식에 감탄하면서 그가 앞으로 음악의 대가가 되리라 생각했으나 그 친구는 평생의 어린이 동요나 하다못해 뽕짝 트롯 하나 작곡 못하고 이제는 고인이 되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가 하면 요즘 한국에서 수능시험이 있다. 그런데 그 수능시험이란 것이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이거나 대부분 사지선답(四枝選答), 즉 4개 중 하나를 고르는 시험인고로 모든 학교에서의 수업이 그것을 기준으로 입시 준비를 하다가 그러한 입시시험을 치르고 학교를 입학한 사람들이라 모두들 순간의 답을 얻는 재치는 있으나 사고력이나 분별력을 요구하는 훈련을 못 받아 사고력이 모자라지 않나 싶다.
미국 대학 입시에서의 에세이(Essay,) 다시 말해서 글짓기라 할까 그러한 문장력을 필수로 하는 것이 한국 입시에 없는 것이 무척 아쉽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동기는 나의 외손녀가 고교 1년생인데 지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Odyssey) 읽기가 에세이 교과 과정인데 꽤나 어렵고 재미를 못 느낀다고 딸이 이야기하길래 손녀 딸에게 옛날 영화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율리시스> 영화를 먼저 보게 하면 재미를 붙일 것 같은데 어떠냐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다. 미국에서 교육받는 아이들도 책을 읽고 사고력을 키우는 수준이 너무 높아 애들이 책 읽는 것에 흥미를 잃을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내가 뜬금없는 이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지난 며칠간 유 튜브에서 한국 국회 국정 감사를 지켜보다가 하도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다.
질의를 하는 국회의원마다 그래도 각 정당에서 뽑힌 논객일진데 우선 장황한 서론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니 틀림없이 본인이 아니고 비서들이 어느 포맷이랄까 또는 인공 지능(AI )같은 곳에서의 서식과 내용을 딴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좌우간 그 서론을 몇 분 장황하게 늘어 놓고 나서 국무위원에게 질의 응답을 하는데 그 내용이 매우 정도가 아니라 한마디로 유치가 극치의 재치문답이다. 다시 말해서 행정가가 아니라 정치가라면 그 나름대로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볼 수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일년에 책을 한권이라도 읽느냐 하면 모두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떤 국회의원은 “나는 읽고 있소!”하고 나설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담한다. 그 대답이란 것이 아마도 장사로 크게 돈을 번 사람의 자서전 아니면 정치로 입신양명(?) 한 사람 이야기 정도일 것이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하여 의사 전달은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 모두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정치 철학을 가질 수 있는 책이나 하다 못해 문학 작품이라도 읽으라 권하면 어떨까? 그 놈의 구호만 외치는 데모는 이제 그만 하라고 하면서 말이다. 수준 높은 유권자가 있으면 수준 있고 철학을 가진 국회의원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렇게 정치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책 좀 읽으세요. 함량이 잔뜩 들어있는 책 말입니다.”
<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