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날이 저물고 있다. 커튼을 젖히고 밖을 보니 여전 바람 한 점 없이 소복소복 내리는 눈(雪)이 눈(眼)을 시리게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나의 절친의 마지막 가는 길, 고별 예배가 있던 날도 함박눈이 엄청 내렸다.
친구의 사랑하는 남편, 딸들, 사위, 손자들, 멀리서 온 친정오빠, 언니 친척들, 많은 친지들, 교인들의 엄숙함 속의 생전의 모습이 담긴 영정사진이 모두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항상 깔끔하고 예쁜 모습이던 친구는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잠든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다.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내며 엄마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준비한 조사를 읽으며 울먹이는 딸들의 눈물에 참석한 모두가 울었다. 진실한 믿음과 구원의 확신이 굳게 서있던 친구는 하와이에 가서 선교훈련 받던 중 의사로부터 병명을 듣고 급하게 버지니아로 돌아왔다.
아이를 낳을 때 병원에 간 것밖에는 없었다는 친구는 나이를 거꾸로 먹듯 젊고 늘 미소지으며 깔끔하고 예쁜 모습으로 건강함을 과시했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점심을 먹으며 자녀들 얘기, 남편들 얘기, 미래 얘기, 특별히 건강관리에 대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대던 여고 동기동창 모임에서 제일로 젊어 보였고 조용했지만 얘기를 시작하면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할 줄 알던 멋진 친구였다.
오랜 세월동안 꽃가게를 운영하며 예쁘게 만들어 내는 꽃바구니에 마음을 담아 갖가지 행사에 결혼식에 정성을 쏟았었다. 맏아들의 아내가 되어 손아래 시동생들을 거두며 모두들 잘 살게 도와줬던 마음 넉넉한 맏며느리로서 힘겨운 삶을 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시동생들이 마음을 모아 보내준 멋진 벤츠를 선물로 받았다며 기쁜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적도 있다. 떠나기 두 주 전 병원에 찾아간 나를 보고 초췌한 모습으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열흘 후에 있을 작은 딸 결혼식 때는 한복을 입어야겠다고 했다. 건강했더라면 결혼식장을 멋지게 꽃 장식하고 예쁜 드레스에 화사한 미소로 축하객을 맞이했을 친구는 병세가 위독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친구 부부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여행을 즐기던 잉꼬부부였으며 어느 해 여름엔 가족이 함께 알래스카로 멋진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 남편의 목소리다. 가슴이 철렁 소리를 낸다. 조금 전 온 가족과 목사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단다. 할 일도 많은 아까운 나이에 이렇게 빨리 가다니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친구는 떠나기 전날 밤 뜬눈으로 밤새도록 중얼중얼 혼자 얘기하고 또 애기했단다. 투병 중에 늘 말한 대로 60여 평생을 건강 지켜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기도 드렸을 것이고 두고 가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큰딸, 작은 딸, 막내딸에게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꼭 남기고 싶었던 많은 얘기였을 것이다.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98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찬송 속에 친구는 천국에 갔다. 16년 긴 세월 동안 아름다운 꽃과 생활하던 친구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하얀 눈꽃을 피워놓고 갔다. 친구를 잃은 아픈 마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으로 슬픔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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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자 워싱턴 문인회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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