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왜 듣는가 묻는다면 그 속에는 피안(彼岸)이 있기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곤 한다. 그러면 피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은 아닐까 말하곤 한다. 그러면 아름다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조금 궁해질 수 밖에 없지만 아름다움은 마음의 소박함을 말하는 것을 아닐까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봄날… 초가집 싸리 울타리에 피어난 노란 개나리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라고나할까, 손을 호호 불며 얼음판 위에서 팽이 치던 개구장이 시절의 겨울 서정… 혹은 음악으로 치면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을 때 이런 피안의 아름다움을 느끼곤한다. 특히 교향곡 1번의 2악장 같은 음악은 음악이라기 보다는 어떤 사실적인 장소를 떠오르게하는데 그 속에는 어떤 망각의 아물거리는 전생의 추억같은 그리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헤매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랄까, 서늘하지만 동시에 따사로운 겨울 서정이 담긴 모습이 있다. 인류가 북극에서부터 기원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싹한 추위와 강렬한 향수는 왠지 일맥상통하는, 추위가 주는 강렬함이라고나할까 순수함이라고나할까, 정신이 번쩍나는 영적인 무지개가 느껴지곤 한다,
누구에게나 이세상엔 피안이 하나쯤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어린시절의 추억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감동… 첫사랑의 아련한 그리움일 수도… 남에게 칭찬받았던 강렬한 성취감일 수도 있겠지만 음악도 그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서정미 짙은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그 중의 하나였는데 한때 20세기
연주인들이 최고로 사랑했던 시벨리우스는 북극의 겨울서정을 그만의 색채로 담아내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핀란드의 (국민)영웅이기도 하였다.
북극 서정을 담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드보르작의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드보르작의 교향곡이 향수를 표현하고 있다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겨울서정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북극이 고향인 시벨리우스에게 있어서 자연은 차가운 물, 얼음 덩어리, 오로라, 눈보라 등을 연상하는 것 빼고는 없었겠지만 때로는 오싹한 눈꽃이 피어나는 그의 음악은 신비롭기 조차 하다. 이러한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유럽에서 보다 미국에서 더욱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는데 그 연관성을 찾아본다면 전혀 상반된, 기후나 자연 환경의 측면에서는 닮은 점은 없었지만 아마도 미국의 청교도 정신과 시벨리우스의 음악의 엄숙하고도 자연의 순박함을 담은 선율미가 서로 맞물린 결과가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과 같은 불협화음, 무조음악 등이 난무하는 20세기 초에 낭만파의 기풍을 고수한 것도 시벨리우스가 미국에서 인기있는 작곡가로 남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아무튼
시벨리우스는 ‘핀란디아’, ‘카렐리아’ 등 민족음악과 교향곡 8개로 20세기의 음악가들의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로 남게되었다.
시벨리우스(1865-1957, 91세 사망)는 60세에 이르러 핀란드 정부로부터 연금 27만 마르카(현시세 약1백- 2백만 달러)를 지급받았는데 아이러니는 연금이 올라갈 수록 그의 작곡 성과는 더욱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특히 65세때 ‘타피올라’(교향시)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점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다만 교향곡 8번까지 남긴 것 만은 분명하고 마지막 작품 (8번)은 스스로 파기했다. 8번 교향곡에 대한 미스테리는 작품성에 대한 부담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신비주의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애써 만든 작품을 태워버리고 말아 시벨리우스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시벨리우스 작품의 신비감을 더해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시벨리우스만큼 미스테리한 요소가 가득한 작곡가도 없었다.
시벨리우스는 교향시 ‘핀란디아’로 국민적 영웅이 되면서 50세부터 연금이 지급, 생활은 편해졌지만 다소 부담스러운 일생을 보내게 된다. 교향곡 1,2,3…. 7번까지 남겼지만 점차 신비주의로 빠지면서(43세때 후두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죽음의 세계 ‘투오넬라(죽음의 강)의 백조’ 같은 작품을 그리다가 마지막 숲의 신 타피오가 다스리는 ‘타피올라(핀란드를 가리킴)’를 마지막으로 음악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만다. 시벨리우스가 잘 표현된 교향곡 4번은 통속적이진 않지만 시벨리우스를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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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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