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단순히 신체 기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 즉 칠정(七情)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는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한의학의 기본 명제인 심신일여(心身一如) 사상에 뿌리를 둔 관점이다. 즉, 마음의 문제는 곧 몸의 문제이며, 몸의 이상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감정 기복,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다
많은 여성이 생리 주기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감정 변화를 겪는다. 월경 전이면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나거나, 쉽게 짜증이 나고 우울감에 빠져드는 월경전증후군(PMS)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개인의 의지나 성격 문제가 아니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같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라는 명백한 ‘신체적 불균형’이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쳐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간기울결(肝氣鬱結), 즉 스트레스와 호르몬 조절을 담당하는 ‘간(肝)’의 기운이 뭉쳐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2017년 ‘임상 내분비학 및 대사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월경 전후의 호르몬 변화가 감정 조절에 중요한 뇌 영역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번아웃이 왔다” - 마음보다 몸이 먼저 지쳤다는 증거
끝없는 피로감과 무기력증을 동반하는 ‘번아웃 증후군’은 흔히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의 결과로만 생각된다. 하지만 누적된 육체적 피로는 정신적 에너지 고갈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밤샘 작업, 불규칙한 생활 패턴, 과도한 육체 활동으로 인해 우리 몸의 에너지, 즉 기(氣)가 고갈되면, 마음을 다스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만성적인 피로가 기혈(氣血)을 소모하고, 특히 생명 활동의 근본 에너지를 저장하는 ‘신장(腎臟)’의 기능을 저하시킨다고 본다. 이는 불안, 초조, 우울감, 그리고 기억력 감퇴와 같은 심리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 의학에서도 만성 피로 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 환자들에게서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높은 비율로 동반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육체적 에너지 시스템의 붕괴가 정신 건강에 치명적임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장(腸)이 편안해야 마음도 편안하다
최근 의학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장-뇌 축(Gut-Brain Axis)’ 이론이다. 장내 미생물 환경이 뇌 기능과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으로, ‘장은 제2의 뇌’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장에서는 세로토닌의 약 90%가 생성된다. 따라서 잘못된 식습관으로 장 건강이 나빠지면, 세로토닌 생성이 줄어들어 불안감과 우울감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우리가 겪는 마음의 문제는 복합적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심리적인 측면에서만 찾으려는 관성은, 몸이 보내는 중요한 구조 신호를 놓치게 만들 수 있다. 이유 없는 우울감이나 불안이 계속된다면, 나의 수면 시간은 충분한지, 식단은 건강한지, 피로가 누적되지는 않았는지 먼저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의 (703)942-8858
마음의 병은 종종 몸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몸을 먼저 바로 세우고 돌볼 때, 마음의 평화도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이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한의학의 지혜이자, 최신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새로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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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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