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서 좋은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소아마비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의 학교 풍경에는 이 질환을 겪은 친구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없다. 1983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온 세상에서 그렇게 될 것 같다. 고통의 끝이 보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아이반호’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작가 월터 스콧은 평생 절면서 자신의 증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 역시 네 살부터 갖게 된 장애에 굴하지 않고 소아마비 퇴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폴리오로 불리는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주로 아동의 신경계를 공격하여 신체 마비 증상을 가져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신도 소아마비를 앓던 조너스 소크가 백신 개발을 발표하기 직전인 1952년 미국에서는 5만 8000명이 감염됐다. 사망자만 3000명이 넘었다. 미국인들이 핵폭탄보다 소아마비를 더 두려워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소크의 쾌거 배후에는 국립소아마비극복재단(NFIP)이 있었다. 이 재단을 출범시킨 사람이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39세가 되던 1921년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된 루스벨트의 노력으로 1938년 1월 3일 재단의 활동이 시작됐다. 기금 마련을 위해 그가 전개한 ‘10센트의 행진’은 큰 호응을 얻었다. 사람들은 10센트 동전을 ‘루스벨트 다임(dimes)’이라고 불렀다.
재단은 과학의 진보를 통해 폴리오를 정복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생의학 연구를 광범위하게 지원했다. 그중 하나가 피츠버그대 의대 교수였던 소크다. 그의 성공은 페니실린 개발에 버금가는 과학적 성취였다. 소아마비 퇴치를 위한 헌신과 선행은 그 후에도 릴레이처럼 이어져왔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그 대열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
최호근 / 고려대 사학과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