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접 중남미 반미 정권 극도 경계
▶ 미국, 사회주의 정권 교체 공작 지속
▶ 파나마 침공 36년 전과 같은 날 베네수엘라 침공 마두로 또 체포
▶ 군사 작전·사법처리까지 ‘기시감’
▶ “미 국익에 반하는 정권 결국 제거”
▶ 트럼프, 더 노골적 ‘돈로주의’ 선언
▶ 국제법 위반 논란은 매번 허공에

1989년 12월 20일 미국이 파나마 침공 직후 미국군이 파나마 시내에서 수색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제공]
2026년 1월 3일 새벽(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군사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붙잡아 압송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36년 전인 1990년 파나마의 군사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가 미군에 투항해 미국으로 압송된 날과 정확히 같은 날짜였습니다. 마치 ‘역사적 데자뷔’를 노린 듯한 택일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국 영토에서 미국 특수부대에 붙잡혀 강제 이송된 충격적인 사태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든 이유입니다.과거 미국은 중남미 지역을 앞마당처럼 인식해 반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면 정권에 무력으로 개입하거나 정보기관을 동원한 비밀공작으로 ‘레짐 체인지(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이뤄냈어요.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도 미국의 긴 ‘남미 정권 교체’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미국 CBS방송은 이번 사태를 “미국식 중남미 정권 교체 계보를 잇는 사건”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개입주의를 더 노골적이고 강경하게 부활시켰다”라고 분석했습니다.
■ ‘앞마당’ 남미 정권 개입의 흑역사미국의 정권 개입 역사는 냉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 과테말라에서는 민주 선거를 통해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과테말라 대통령이 당선돼 토지개혁을 주도했죠. 그 과정에서 미국 자본에 타격을 주자 미 중앙정보국(CIA)은 반군 양성과 지원, 심리전 등 각종 공작을 벌여 1954년 그를 실각시켰습니다. 이 개입은 ‘공산주의 확산 저지’와 함께 미국 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United Fruit)’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2003년 공식 문서로 인정됐죠. 아르벤스 실각 이후 과테말라에는 친미 정부가 들어섰어요.
1973년 칠레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민주 선거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권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미국에 의해 축출된 겁니다. 아옌데는 집권 후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미국과 충돌했고, 칠레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던 미국은 정권 붕괴 작전을 실행했습니다. 당시 CIA는 다양한 비밀공작을 벌였고, 아옌데가 제거된 뒤 칠레에는 이후 미국이 지원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이 들어서 군부의 철권통치가 오래도록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수만 명의 반체제 인사가 실종되거나 희생됐어요.
니카라과에서는 197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들어선 산디니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CIA가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고, 이 작전이 1986년 언론에 폭로되며 이른바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비화했습니다.
이란-콘트라 사건이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이란에 무기를 비밀리에 팔고 그 대가로 니카라과 반군 콘트라에 자금을 지원한 정치 스캔들이에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이 일로 탄핵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니카라과에서는 1990년 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정권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미국의 정권 교체 개입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 대표적이에요. 1961년 미국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CIA가 훈련한 망명자 부대를 투입해 피그스만 침공 공작을 벌이다 실패합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이 사건을 계기로 소련과 더 밀착하게 된 카스트로 정권과 미국은 이후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죠. 오히려 카스트로 정권의 정통성을 견고히 하는 역효과를 냈음에도 미국은 쿠바 정권 전복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갔습니다.
■ 미국서 징역형 노리에가-마두로 판박이1989년 파나마 침공은 ‘정권 수장 체포’라는 점에서 마두로 사건과 흡사합니다. 미군이 파나마에서 실행한 ‘정당한 명분 작전(Operation Just Cause)’은 군사작전을 통해 한 국가의 실권자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가장 상징적인 정권교체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붙잡기 위해 2만7,000명의 병력을 투입해 파나마를 침공했습니다.
노리에가는 1983년부터 파나마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군인으로, 처음에는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미국에 협력하며 정치적 후원을 받았습니다.
본래 미국의 친구였지만 마약 카르텔과 결탁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코카인 밀매 중계자 역할을 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뒤 반미 노선으로 갈아탔죠.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자 그는 선거 무효를 선언하며 권력을 가로챘습니다. 결정적으로 같은 해 12월 파나마 주둔 미군 장교가 파나마 방위권에 사살당하고 또 다른 장교가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에 침공 명분이 생겼어요.
결국 노리에가는 바티칸 대사관에 숨어 있다가 1990년 1월 3일 항복했습니다. 마두로가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에 체포됐던 날과 같은 날이죠. 미국은 두 사람을 외교 면책 특권이 있는 ‘국가원수’가 아닌 미국법을 위반한 ‘범죄자’로 규정합니다.
노리에가는 대통령이 아닌 파나마 방위군 사령관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을 행사하는 실권자였죠. 미국은 노리에가를 마약 밀매 혐의로 미국 플로리다 연방 법원에 기소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2020년 마두로도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라는 혐의로 기소한 뒤 1,500달러의 현상금까지 걸었어요.
미국에 압송된 노리에가는 미 법정에서 40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감형돼 17년을 복역합니다. 이후 프랑스와 파나마 등에서 추가로 수감 생활을 이어가다 2017년 생을 마감했어요. 마두로 역시 노리에가와 비슷한 절차를 거쳐 미국 내 교도소에서 사실상 종신형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두 사건의 유사점은 놀라울 정도”라며 “대법원 판례에 따라 마두로 대통령은 어떤 항변도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미국에서 수십 년 동안 수감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 미국 ‘국제법 위반’ 논란에 “서반구는 내구역”다시 세계에는 하나의 의문이 남겨졌습니다. ‘사법권이 미치지 않은 외국에 대해 자국의 법 집행을 이유로 군사력을 투입해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 말이죠. 과거 미국이 중남미 지역의 내정에 개입하거나 정권 붕괴를 위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때마다 동반됐던 논란입니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은 모든 회원국이 국제관계에서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해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가고, 유엔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위권 발동 차원이나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없으면 무력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 유엔의 기본 방침이고요. 유엔 안보리의 명시적 승인도 없었고, 상대방의 지원 요청도 없었던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일방적 무력 침공이었고, 주권 침해라고 국제사회는 비판합니다. 미국은 ‘돈로 독트린’이라는 새로운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체포 직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저택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먼로주의를 훨씬 능가했고 이제 사람들은 이를 돈로주의라고 부른다”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의 지배력은 다시는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돈로주의는 19세기 미국 외교 원칙인 ‘먼로주의(미국의 유럽대륙에 대한 불간섭·아메리카 대륙의 미국 우위)’에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을 붙여 만든 합성어로, 먼로주의의 트럼프식 버전이에요. 과거처럼 은밀한 공작이나 간접 개입이 아니라 필요하면 직접 통치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죠.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정권은 결국 제거된다”는 하나의 오래된 원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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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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