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미국이 정말 살기 좋았거든요? 음식값도 저렴했고 치안도 이렇게 불안하지 않았어요.”
기자가 한인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미국은 한때 ‘기회의 땅’이었지만, 이제는 ‘살기 버거운 나라’가 됐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단순한 향수일까. 아니면 구조적 변화의 신호일까.
미국 경제의 판은 이미 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와 양적완화가 이어졌고,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유동성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돈의 가치는 떨어졌고, 자산 가격은 급등했다. 그 중심에는 주택이 있었다. 집값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뒤이어 렌트비와 생활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치솟았다.
문제는 일자리와 임금의 속도다. 기술 혁신과 구조조정 속에서 중산층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지만, 주거비와 생필품 가격은 멈추지 않는다. 남가주만 봐도 렌트비는 여전히 전국 최고 수준이다. 생활물가 역시 체감 부담이 크다. 소고기 가격은 1년 새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육 두수가 195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줄어든 데다, 가뭄과 기후 변화까지 겹쳤다. 미국인들의 소울푸드인 BBQ를 마음껏 즐기기 어려운 시대가 된 셈이다.
반면 자산 시장은 다른 풍경을 보인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은 연일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증시는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움직인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자산이 없는 계층은 더 멀어지는 ‘K자형 경제’가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현실의 단면은 길거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LA 윌셔 메인 도로변에는 푸른색 노숙자 텐트촌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2024년 기준 미국 내 노숙자 수는 약 77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가구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가구가 절반에 육박한다. 생계형 범죄도 횡행한다. 마트 입구마다 붙은 수십장의 절도범 사진과 도난 방지를 위해 자물쇠로 잠긴 진열대는 우리가 알던 과거의 미국이 아님을 방증한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젊은 세대의 선택도 달라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5~39세 젊은 층의 투자계좌 자금 이체 비중은 2023년 14.4%로 10년 전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26세 연령층의 투자계좌 이체 비중은 2015년 8%에서 2025년 5월 40%까지 급증했다. 주택 매매보다 주택·코인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세대가 자녀에게 “그래도 집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과거 베이비부머 세대가 구입했던 주택 가격과 지금의 가격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 일자리는 줄었고, 물가는 올랐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주택이든 주식이든 선택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의지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올랐다. 필요한 곳에는 정교하게 개입하되, 방만하게 새는 예산은 줄이고, 투입된 재정은 철저히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거대한 기회의 시장이다. 그러나 그 기회가 누구에게 열려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공정하게 분배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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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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