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면초가 몰린 K-가전
▶ 완제품 원자재값·물류비 상승압박
▶ 중국 TCL에 TV 세계점유율 1위 내줘
▶ 수천억대 영업적자 메우려 비용절감
▶ 삼성, DX 올해 비용 두자릿수 축소
반도체 업계가 역대 최고 호황을 누리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동안 제조업의 또 다른 축인 가전업계는 비용 최소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칩플레이션(메모리 가격 상승), 중동 전쟁의 삼중고 탓에 지난해 기록한 ‘수천억 원대 영업적자’ 부진을 올해도 떨쳐내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 직원에 1인당 4억5,000만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노동조합의 강경 요구까지 받으며 재정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최근 내부적으로 올해 비용을 지난해 대비 두 자릿수(%) 절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DX부문은 크게 TV·가전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VD), 생활가전(DA) 사업부와 스마트폰·통신장비를 만드는 모바일 경험(DX), 네트워크(NW)사업부로 구성된다.
최근 ‘갤럭시 S26’이 역대 최대 사전 판매를 기록하며 스마트폰 사업이 선방하고 있는 만큼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낸 VD·DA 조직이 긴축의 최우선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DX부문 부사장급 이하 임원들에게 10시간 미만 항공편 이용 시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제공하는 출장 비용 절감 조치도 시행에 들어갔다.
LG전자 역시 올해 인력 구조 효율화와 출장 최소화 등 비용 절감책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회사는 지난해 TV·PC 사업을 맡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솔루션(MS) 사업본부를 시작으로 전사적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MS사업본부는 특히 지난해 매출을 전년 수준으로 유지했음에도 7,509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영업적자를 냈던 만큼 인력 효율화 등을 통한 비용 감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수익성을 끌어올리려면 비용 절감이나 원가 구조 혁신 같은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가전 기업이 일제히 이 같은 긴축 경영에 나선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꼽힌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면서 유류비는 물론 완제품에 들어가는 원자재 값과 생산 시설의 전기료, 물류비 등이 모두 상승 압박에 내몰렸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운송비는 각각 2021년 2조7,927억원, 3조1,567억 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2022년 3 ,2143억원, 3조9,172억 원으로 10~20% 급등했다. 이후 운반비는 지난해 삼성전자 2조5,121억원, LG전자 3조514억원으로 다시 안정화했지만 올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및 중동 내 무력 충돌 확산으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TV의 인쇄회로기판(PCB), 레진처럼 전기를 쓰는 가전 원재료 모두 영향을 받는다”며 “원유는 생산 제반에 모두 들어가는 혈액 같은 것이라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원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 업체들을 겨냥해 프리미엄(고급화) 전략으로 내건 ‘인공지능(AI) 가전’도 부메랑이 되고 있다. AI 기능을 구현하는 데 필수인 메모리 가격이 글로벌 빅테크발 수요를 타고 급등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표준 D램 제품인 ‘DDR4 8Gb 1Gx8 2133MHz’의 가격은 지난달 말 13달러로 1년 전(1.35달러)과 비교해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메모리 수요가 흡수되면서 TV용 메모리 역시 공급 부족이 빚어졌고 4K TV에 쓰이는 4GB DDR4 메모리 가격은 1년 새 4배 이상 뛰었다고 전했다. 올 1분기에도 전 분기 대비 60% 이상 비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성택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로봇청소기와 관련해 “AI 기능 확대와 맞물려 반도체 가격 상승 영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중국 가전의 저가 물량 공세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TCL은 지난해 12월 월별 출하량 기준으로 전 세계 TV 시장 점유율 16%를 기록해 11개월 연속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정상에 올랐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비록 한 달의 특징이지만 TCL이 출하량을 늘리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소니와 협력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힌다면 삼성전자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에는 노조의 성과급 요구도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노조는 최근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메모리 사업부 직원에게 성과급으로 인당 4억5,000만원, 파운드리 사업부는 인당 3억원을 요구했다. 임단협 결렬 이후 진행 중인 쟁의행위 찬반 투표는 13일 오후 기준 찬성률 72.6%를 기록하며 노사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특정 사업부에 성과급을 몰아주면 DX부문을 포함한 인건비와 연구개발(R&D) 투자, 다른 사업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재원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업부 간 실적 희비가 엇갈리면서 노노(勞勞)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노조가 불황을 겪는 DX부문 직원의 이익 대변에는 소홀한 채 DS부문 중심의 성과급 요구에만 치중한다는 불만이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직원의 절반 이상이 가입한 초기업노조의 경우 가입자 6만5,949명 중 77.9%인 5만1,374명이 DS부문 소속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일부 직원들이 DS 주도의 파업 추진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부의 한 관계자는 “당해 실적으로 사업부 간 성과급 편차를 지나치게 두는 것은 조직 결속력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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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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