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내에 들어서자 안내자인‘이선생’이 꽃 살 돈을 달라고 했다.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놓을 꽃이라고 했다. 얼마면 되겠느냐고 물으니 20달러면 충분하단다.
이 동상은 지난 94년 김 주석 사망 후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몰려나와 무릎꿇고 경배했던 곳이다. 나는 김 주석 생시에 평양에 두 번 왔었지만 94년 이후의 모든 방문객은 우선적으로 이 동상을 찾아 경배하게 돼있었다. 플로리다주에서 온 일행인 이선생과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경배는 할 수 없었다. 꽃을 동상 앞에 갖다 놓는 역할은 제일 연장자인 이선생이 맡았다.
우리가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많은 고등중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왔고, 특히 신혼부부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명당자리인 만수대에서는 평양 중심부가 거의 다 내려다보이고, 특히 주체사상탑이 건너편에 우뚝 솟아있었다. 만수대와 그 부근에는 젊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들은 당 창건 55주년을 맞아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동원됐다고 했다.
만수대를 떠나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5시경이었다. 고려호텔은 평양에서 제일 크고 설비 면에서도 북한에서는 최고급이다. 로비의 사무실에 들러 체크인 수속을 했다. 7일간 숙박비의 80%를 선불해야 한다고 해서 600달러를 주고 영수증을 받았다. 컴퓨터로 프린트한 것이 아니라 여직원이 손으로 쓴 것이었다. 여 직원은 그 영수증 위에 퍼런 색 고무도장을 쾅 찍어줬다.
고려호텔에는 객실이 약800개 있다고 하는데 한쪽 켠은 사용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호텔에 투숙객이 많아야 50명도 되지 않는 듯 했다. 호텔 식당엔 저녁 식사시간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특히 아침식사 때는 손님이 가뭄에 콩나기 식으로 적었다. 대형 호텔이 이처럼 텅 비어 있으니 주인인 북한 정부가 큰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걱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통용될 듯 했다. 앞으로 남한의 이산가족이 평양에 몰려오면 아마도 이 호텔에 투숙하게 될 것이므로 지금보다 운영이 훨씬 원활해 질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체크인 수속을 마친 후 17층에 있는 내 방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웬 사람이 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호텔 방에 드나드는 북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사람이었다.
방에 들어와 쉬면서 둘러보니 TV와 라디오가 한 대씩 놓여 있고 침대는 싱글 두 개가 붙어 있었다. 거실이 조그맣게 딸려 있고 욕조엔 샤워시설이 부착돼 있었다. 에어컨디션도 가동됐다. 17층이나 되는 방에서 시가를 내려다보면서 새삼 평양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1981년과 1990년 왔을 때보다 길거리의 행인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외국의 여느 큰 도시보다는 매우 적었다. 특히 고려호텔이 평양역에서 걸어서 채 10분도 되지 않는 도심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적이 너무나 한적했다. 물론 차량 통행도 매우 뜸했다.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워 상념에 빠졌다. 왜 평양 오는 길이 이처럼 힘들고 오랜 세월을 허비해야 하나? 왜 우리 민족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 잠시 눈을 부쳤다가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 방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문밖에 서 있었다. 무엇을 달라는 눈치여서 가져온 담배를 주고는 로비에 내려가 안내자인 이선생과 일정에 관해 간단히 논의했다. 호텔 식당에서 일행 4명이 안내자 2명, 운전사 1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모두 평양 냉면을 주문했는데 쟁반에 담은 것과 놋그릇에 담은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쟁반 냉면이 더 비쌌던 것으로 기억된다. 7명이 먹은 음식값이 미화 50달러였다.
저녁 후 호텔 앞에서 약 15분간 산책하다가 방에 들어왔다. 첫 날은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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