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 방문길에 중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자금성, 만리장성 등 북경 인근 관광명소에는 거짓말 좀 보태 절반이 한국사람들이었다. 비용이 한국 국내관광보다 싼 탓도 있겠지만 식당, 상가, 공연장 등 어느 곳을 가나 한국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버스가 서면 합죽선, 털모자, 진주목걸이 등을 파는 잡상인들이 몰려 "만원에 2개" "정말 싸다"며 서툰 한국말로 외쳐댔다. 관광코스에는 ‘옥공장’ ‘진주양식장’ ‘북경의대 한방센터’ 등이 포함돼 한국인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제품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한국 혹은 미국에서의 가격보다 "몇배가 싸다"는 말에 혹해 너도나도 사재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는 북경의대 한방병원에서는 그럴듯한 풍채의 한의사가 나와 진맥을 한 뒤 처방을 써줬으나 정작 내놓는 약은 미리 정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식사를 하는 곳도 대부분 기념품 판매점을 거치도록 돼 있다. 한국말이 능숙해 당연히 조선족이려니 생각했던 진주양식장의 여점원도 알고 보니 중국인이었다. 한국말을 잘하면 월급을 50% 더 주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서 배웠다는 설명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김춘향이라는 이름의 조선족 여성은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인기 있고 돈도 잘 버는’ 관광가이드가 되기 위해 2년간 학교를 다니고 자격시험까지 치렀다고 한다. 김씨는 3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이 유창했고 국영 전통차 판매점의 조선족 4세 매니저도 한국말을 잘해 2세만 되도 우리말이 서툰 미주 한인들과는 대조가 됐다.
관광업소의 안내문은 대개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등 4가지로 쓰여 있었다. 한국의 국력이 그만큼 성장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람들이 그만큼 ‘봉’노릇을 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는 것 같았다. 한국인 관광객들 가운데는 농한기를 맞은 시골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70년대 초반 한국 단체관광에 나섰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호텔방 TV에서는 한국 연속극이 방영되는가 하면 한국 신세대 가수의 노래에 맞춰 에어로빅 강습도 했다.
며칠전 한국신문 사회면에는 ‘파리서 조롱받는 코리안 외제병’이라는 제목의 박스기사가 실렸다. 고급 핸드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뷔통사는 한번 가방을 사간 사람에게는 일정기간 다시 물건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사람들이 못 사갈리 없다.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들에게 커미션을 주고 대리구매를 시키는데 그러다가 여권과 수표의 사인이 달라 물건을 사지 못하고 망신만 당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있는 사람들은 유럽으로 여행가고 없는 사람들은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점은 다르지만 제2의 IMF가 온다는데도 불구하고 샤핑에 물불 안 가리는 것만은 있는 이들이나 없는 이들이나 공통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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