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
▶ 신기욱 (스탠포드대 교수, 사회학/국제학)
사상 유례가 없는 테러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그것도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뉴욕과 워싱턴에서 말이다. 아니 이건 테러가 아니라 전쟁이다. 선전포고가 없는 전쟁. 할리읏 영화에서나 볼만한 일이 눈앞에 생생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외국의 침공을 경험하지 못한 미국민이 받는 충격은 엄청난 것이며 주변부의 한 섬에서 발생한 진주만 공격에 비할 바 아니다. 또한 21세기를 리드해 가려는 미국의 자존심이 구겨진 것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의 지도력 역시 도전 받고 있다.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도전이번의 테러행위는 한마디로 말해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분신자살 행위이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인 도전인 동시에 그 효과 면에선 전쟁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있다는 글로벌리스트들의 주장이 공허하게만 들린다.
따지고 보면 미국에 대한 테러행위는 새삼스러운 일도 또 예견치 못한 일도 아니다. 냉전시대가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미국의 패권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미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왔다. 세계도처에서 일고 있는 크고 작은 반미주의는 어쩌면 최강국인 미국이 치러야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이 사건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악순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그룹의 색출 및 강력한 응징을 다짐하고 있고 들끓는 여론도 피의 보복을 주문하고 있다. 부시 정부로선 대안이 없어 보인다.
군사 보복-테러 연쇄작용 우려하지만 테러그룹의 색출이 여의치 않을 뿐 아니라 작은 단체 몇개 징벌하는 정도로 여론이 수그러들지 의문이다. 이 경우 미국은 ‘악마사냥’(devil-hunt)에 나설 것이며 이는 곧 전쟁과 같은 대규모의 군사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군사보복은 또 다른 테러행위를 부를 것이며 목숨을 내던진 테러그룹에 군사력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번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악마와의 싸움 즉 ‘성전’(holy war)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전면적인 군사행동은 이들에게 동정적인 이슬람권의 반발을 가져와 새무얼 헌팅턴이 주장한 ‘문명의 충돌’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눈에는 눈’은 근본 해결 못돼부시 정부의 고민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테러행위를 응징하되 문명의 충돌을 피하면서 앞으로의 테러행위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을 찾는데 있을 것이다. ‘눈에는 눈’(eye for eye) 식의 대응방법은 단기적으로는 여론의 지지를 얻을지 모르지만 국제 테러리즘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부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NMD) 계획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긴장된 국제정세는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테러국으로 낙인 찍혀 있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유화적인 정책을 취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래저래 DJ의 유화정책은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든 느낌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가 가까워진다고 해서 또 강력한 힘에 의존해 국제 질서를 만든다고 해서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님이 명백해 졌다. ‘문명의 충돌’을 막고 평화적인 국제 질서를 구축해 이번과 같은 비극을 막는 것은 21세기의 리더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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