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최근 워싱턴 포스트 사설처럼 미국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날 아침 우리 가정에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일이 벌어졌다.
아침 7시경,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필라델피아 누님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비행기가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에 부딪쳐 화염에 휩싸였다는데 맨해탄에 있는 우리 두 아이는 무사하냐는 물음이었다.
허둥지둥 뉴욕으로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앗다. 그 다음 30분동안 20번도 더 걸어보았으나 허사였다. 초조하고 불안하며 온갖 부정적 상황만 떠올랐다. 30분 남짓 됐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큰아들이었다. 형제 둘이 같이 있는데 모두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작은아이는 첫 사고 순간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지하철 정거장을 막 빠져나오고 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꽝하는 굉음과 함께 먼지와 사람들의 부르짓음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길거리로 나와서 전력을 다해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창문밖으로 떨어지고 사체도 일곱구나 봤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그후 몇번째 통화에서 한 이야기이고 그 당시는 그저 “I’m OK. I love you”외에 다른 말은 잇지도 못했다.
이번 테러사건은 그 규모나 사상자수, 상징성, 국경과 얼굴이 없는 전쟁이라는 점등에서 유사한 재난과는 구별되는 듯 싶다. 공상소설·영화에서나 볼듯한 일이 갑자기 현실로 닥아온 것이다.
이런 재난을 만나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부정적 정서가 우리를 일시에 휩싸버린다. 극도의 공포, 경악, 좌절감, 분노 등이다. 주목할 것은 본인이 직접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목격만 해도 이런 감정을 느낄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정신과 정서라는 것도 용량이 있어서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극한 감정들을 소화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그날 아침 아내는 자꾸 TV를 끄자고 했다. 정서적으로 감당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감각이 마비된듯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하거나, 그저 남의 일인양 못본체, 하거나, 무감각 무표정하게 멍해질 수가 있다. 때로는 그 사건현장이 환상처럼 되풀이 되거나 반복적인 악몽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아예 이런 엄청난 사건을 연상시키는 말이나 생각, 현장을 피하려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지금 초긴장 상태에 있고 불안해 하고 있다. 이런 흥분된 상태는 흔히 불면증, 집중곤란증을 초래하고, 조그만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경계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사건발생후 한달이내에 최소 2일 이상 지속될 때에 이를 급성 스트레스 증후군이라 한다. 심한 경우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
어떤 때는 이런 증상이 조그만 정신적 충격으로 수년후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때도 있고, 중증인 경우 환청, 환시, 망상등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며 심한 우울증이 흔히 동반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경미한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주된 증상으로 일시적 적응장애현상인 것이 보통이다. 이런 증상과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며 격려를 주고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번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을 당한 후 미국인들이 대처하는 방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기관리 시스템의 즉각적 동원, 자원봉사 시스템의 동원, 헌혈 등 희생적 참여 등이다. 한국에서는 재해가 있으면 모금부터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위대성이 지금 시험받고 있으나, 다수의 미국인들은 즉시 국론을 결집하여 국가적 재난에 일관되게 대응하는 것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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