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순자씨 사건때 흑인 커뮤니티는 이 사건을 인종차별로 받아 들였었다. 한인 커뮤니티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돈을 내지않고 물건을 집어 가려던 흑인소녀와 가게주인 사이에 일어난 몸싸움 끝의 비극이었다. 단순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인사회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점점 번져나가 결국 한·흑문제로 비화됐고 매스컴에서도 그렇게 취급했다. 그 결과 4.29 폭동에서 한인가게들이 표적이 되어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최근 뉴욕 테러사건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응징이 두순자씨 사건을 연상케 한다. 미국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참사를 완전히 테러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공격도 정당방위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과격파들의 시각은 다르다. 지하드(성전)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슬람세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같은 미국의 우방들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냉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걸프전때 처음에는 아랍연맹이 이라크의 후세인규탄 결의안을 채택했었으며 이집트, 시리아, 파키스탄, 모로코 등도 연합군에 병력까지 파견했었다. 그런데 미군이 이라크를 폭격하고 수천명의 이라크군인들이 죽어가자 미국의 이슬람맹방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아랍연맹이 후세인규탄 성명서를 낸 것이 90년 8월인데 이들이 태도를 1백80도 바꾸어 미국규탄 성명서를 낸 것이 90년 11월이다. 석달만에 미국지지에서 미국반대로 바뀐 셈이다.
왜 그랬을까. 이들은 수만명의 이라크군인들이 참호 속에서 손을 들고 기어나와 미군들의 포로가 되는 비굴한 광경과 미국의 막강한 공군력 앞에 이라크의 도시들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이슬람세계가 서방세계에 무릎 꿇는 것 같은 비참함을 맛본 것이다. “후세인도 나쁘지만 미국은 더 나쁘다” - 이것이 이슬람국가들의 메시지였다.
애당초 걸프전은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전쟁이었다. 이것이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이 되고 나중에는 이슬람과 서방세계의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어져 버렸다. ‘침략자 후세인’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라고 미국이 귀따갑도록 설명했는데도 결국은 ‘이슬람세계와 서방세계의 대결’이라는 후세인의 주장이 먹혀들게 된 것이다. 덕분에 후세인은 되게 얻어맞고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전투에서는 지고 전쟁에서는 이긴 셈이다.
지금 아랍세계에서는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박수치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 그랬다가는 격렬한 데모에 말려들어 정권을 내놓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과격주의자들이 이슬람세계의 분위기를 쥐고 있는 것이 문제다. “신이여! 미국을 응징하소서. 미국인을 더 많이 죽게하여 그들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소서” 이것이 빈 라덴의 기도내용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대립때에는 대표세력으로 양진영에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문제가 있어도 이 두 나라의 말이면 먹혀 들어가 웬만한 것은 수습되었다. 체제를 유지하려면 미국이나 소련의 보호가 절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새 질서에서는 강대국의 보호가 필요없게 되었다. 그런데다 이슬람세계에는 보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우디,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이집트 등은 보스가 되기 위해 과격파인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서로 자기편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과의 타협을 고려하는 지도자는 모슬렘 형제의 배반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모든 상황에 브레이크가 걸리지를 않는다.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같은 평화주의자가 모슬렘의 손에 암살당한 사실은 이슬람 과격파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결국 이번 전쟁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동조하는 국가와 반대하는 국가로 세계를 갈라놓을 것이며 새 질서의 윤곽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두순자씨 사건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해명이 먹혀들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이 이 전쟁을 아무리 ‘테러응징’이라고 주장해도 이슬람세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이라크까지 공격하는 날에는 이슬람과 비이슬람의 충돌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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