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와 LA의 8년 인연이 다할 수도 있는 기로에 섰다.
다저스가 현재 신청해 놓고 있는 연봉중재(arbitration)에 대해 박찬호가 19일까지 거부하면 다저스와의 재계약은 없게 되고, 중재를 수용하더라도 내달 8일전에 조건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박찬호는 LA를 떠나게 된다.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 선수가 된 박찬호에 대한 각 구단들의 관심은 당초 연봉2000만달러선의 대박을 터뜨릴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현재로서는 싸늘하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박의 대리인 스캇 보라스가 제시한 7년 1억599만 달러(연평균 1,500만달러) 요구에 딱지를 놨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메츠도 박보다 저렴한 다른 선수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보도다. 다저스 GM 에반스는 찬호를 원하나 적정가격이 아니면 재계약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고 있다. 후보군에서 이것 저것 제하고 보니 갈 곳이 없지 않은가!
간단히 말하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박의 대리인 보라스의 희망가격과 구단이 생각하는 가격에 차이가 크다. 보라스는 박찬호의 퀄러티 스타터, 피안타율등 소위 X파일로 통하는 박찬호의 화려한 ‘과거’ 2년치 실적통계를 내세우나 구단들의 관심은 박의 미래가치다. 파는 사람입장에서 유리한 수치만 모은 X파일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도 없거니와, 억대거물의 자질을 보여줬냐는 것. 꼭 이겨야 할 경기는 반드시 따내는 집중력과 승부근성,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배짱, 흥행을 부추기고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간적 매력과 스타성등과 관련해 박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다.
한푼이라도 더 받고, 덜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박찬호는 돈 이상의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박찬호가 기업의 총수라면 보라스는 재정 및 홍보담당 이사다. 보라스가 보는 것 이상을 봐야 한다. 연봉은 소득(income)이고 박찬호가 중시해야할 부분은 재산(wealth)이다. 연봉협상은 보라스의 몫이고 박찬호의 눈은 선수로서 더 클 수 있는 바탕이나 행복등 자신의 총체적 재산에 맞춰져야 한다. 이런 것들은 보라스가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봉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다.
찬호와 LA와의 인연. 이는 연봉 못지 않은 박찬호의 재산이다. 떠날 때 사람이 더 귀해 보이듯이 박찬호와 LA의 인연을 다시 생각해 보면 박찬호가 LA와서 한 일은 참으로 크다. 찬호 덕분에 LA한국사람들은 기가 살았고 타운 술집 장사도 잘됐다. 어느 한국정부 관리가 찬호만큼 민간외교를 했을까. 찬호가 LA한인사회에 한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는 돈으로 계측이 안되는 것이었다. LA 사람들은 찬호가 있기에 행복했고 LA사람들의 행복은 박찬호에게도 무한한 자긍심의 원천이었고 그래서 팔뚝에 힘이 더 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LA를 떠나고 남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연봉협상과정에서 보여주는 박찬호의 캐릭터다. 돈문제 처리를 보면 인간성이 드러난다. 어차피 돈 승강이가 벌어지기 마련인 윈터리그지만 연봉협상에서 깐깐하게 군 선수중 잘 풀리는 경우는 별로 못봤다. 연봉조정때 악명을 떨친 게리 세필드나 후안 곤잘레스가 지금 냉랭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열심히 한 만큼, 실력만큼 대우 받겠다는 것이지만 연봉협상과정에서 보인 이미지는 거물급일수록 중요하다. 때로 마이너스 재산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2년간 3000만달러로 계약이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진으로는 팀에 누가 된다"며 은퇴해 버린 카디널스의 ‘빅 맥’ 마크 맥과이어. 플레이할 때도 그랬지만 떠날 때 얼마나 더 커 보이는가.
심각한 가격차이로 냉기만 흐르는 윈터리그. 박찬호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보라스의 협상에 찬호 자신의 행복과 캐릭터가 담긴 가이드라인을 던져주는 것이다. 각박할수록 의연한 거래가 박찬호의 행복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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