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8시.
’따르릉’... 한주일 밀린 단잠을 가르고 전화벨이 울린다.
"하이고오, 정기자님이라예. 이거 미안해서 어짜지예. 어제 했던 인터뷰, 없던걸로 해주이소. 나 안할랑갑니다"
잠결에 이게 무슨 소린가 하다가, 이내 낭패감에 잠이 홀라당 달아나 버린다. 가난한 사람들만 다닌다는 작은 교회가, 자기네보다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찾아 돕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전날 인터뷰했던 최미화 사모다.
그녀는 찐한 경상도 사투리로 "우리 교회는 순 노동치는 사람들하고 불법체류자만 한 70명 모이는데, 목사님이 교회에 잔고 두면 안된다꼬 다 털어서 남 돕고 나면 참말로 상처 많은 사람들이 놀랍게 회복된다 아입니꺼"라고 자랑했었다. 연말에 이웃 돕는 사람들 취재하면서 좋은 대상을 만났다 싶어 사진취재까지 다 연락해놓은 터에 "밤새 회개했는데 이렇게 떠들 일이 아니"라며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다른 사람을 찾아서 기사와 사진 모두 바꿔야되게 생겼다. 갑자기 어디서 또 누굴 찾는담... 신문은 매일 매일 사람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모두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들이 기자의 손을 거치면 기사로 탈바꿈한다. 기사란 결국 사람들이 벌이는 이야기고, 신문은 매일 벌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독자에게 전해주는 도구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나쁜 짓(?) 한 사람, 좋은 일 하는 사람, 특이한 사람, 돈 많이 번 사람... 때로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지나치는 이야기도 기자들에게는 좋은 기사거리가 되고, 남들은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눈엔 범상치 않은 얘깃거리가 숨어있기도 하다.
취재 섭외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내가 무슨 신문에 날 사람이 됩니까" "이런게 무슨 기사감인가요"라는 것이다. 신문에 나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탓이다. 그런데 신문은 대단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커뮤니티와 함께 숨쉬는 한국일보는 모든 사람을 대단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특집부’는 매일 터지는 사건, 사고, 전쟁, 경제 뉴스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문자 그대로 ‘특집’ 기사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필자가 데스크를 맡고 있는 특집 2부에서는 가정여성, 문화, 교육면을 일주일에 7개 면씩 만든다. 그외에 상담, 칼럼등 외부원고면도 5개 면을 내보낸다. 생각해보라. 이 면들을 매주 무슨 이야기로 채우겠는가?
우리는 매주 월요일 아침 회의를 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한 주 ‘먹고 살 식단’을 짠다. 문화면은 어떤 기사들로, 교육면은 무슨 정보로, 가정여성면은 어떤 주제로 이번 주 ‘판’을 막을 것인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다. 일단 주제를 잡으면, 중요한 일은 그 다음부터. 거기에 딱 맞는 사람들을 찾는 일이다. 누구를 만나야 좋은 이야기가 나올지, 끊임없이 찾고 묻고 전화한다. 결국 좋은 기사의 성패는 적절한 사람을 찾느냐 못 찾느냐에 달려 있다.
올 한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며 보냈다. 종교면을 맡았던 상반기에는 불행히도 교회와 단체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주로 만났지만, 성지순례차 찾아간 인도에서 문명이 전혀 닿지 않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가정여성을 전담한 후반기에는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충실한 삶을 이어가는 여성들을 많이 만났다. 요리 잘하는 주부, 옷 잘입는 사람, 실내장식 멋지게 해놓은 여성등.
그중에서도 스토리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사람들이 있다. 유방암 절제수술을 한 후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해 자신의 투병기를 공개한 김혜영씨, 알콜중독으로 폐인이 됐으나 아내의 도움으로 재기한 뼈아픈 경험을 털어놓은 이상원씨, 산사에서만 먹던 무공해 사찰음식을 세상으로 갖고 내려온 선재스님, 60세의 나이에 칼스테이트 롱비치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은 홍경자씨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내년 한해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 울고 웃고 감동하게 될지 궁금하다. 사람을 찾는 일에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면서. 해피 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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