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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훈 편집위원>
한국인들의 영어교육 열기는 세계적이다. 초등학교도 모자라 유치원 때부터 영어 과외를 하는가 하면 아예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 영어 사용권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6월 열릴 월드컵을 앞두고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 이런 교육열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최근 문을 연 월드컵 스테디엄을 찾은 미국인들은 사방에 붙어 있는 영어 안내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많다. 분명히 영어는 영어인데 의미가 엉뚱한 것이다. 장애자용 엘리베이터에 ‘고장난 엘리베이터’란 뜻의 ‘Disabled Elevator’ 사인이 붙어 있는가 하면 흡연실 표기는 ‘Smorking Room’으로, 관객을 뜻하는 ‘spectator’는 ‘spector’로 돼 있다. 중학생이면 알만한 단어들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
한국 관계자들은 컴퓨터 문제라고 둘러대고 있으나 이런 엉터리 실수를 하는 컴퓨터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인을 만들어 걸기 전 미국인 한 사람만 데리고 자문을 받았어도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11만개에 달하는 영어 사인판이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한국어 발음 영문 표기법을 바꾸면서 일부는 신식으로 바꾸었으나 일부는 구식 그대로 남아 있어 가뜩이나 한글 발음하기 힘든 외국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인천은 ‘Inchon’이 아니라 ‘Incheon’, 부산은 ‘Pusan’이 아니라 ‘Busan’, 경주는 ‘Kyungju’가 아니라 ‘Gyeongju’다. 한글 발음에 보다 가깝게 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겠으나 외국인들이 한글 발음하기는 한결 힘들게 됐다. 그나마 한 군데서는 구식을, 다른 쪽에서는 신식을 쓰고 있어 관광객 입장에서는 ‘Kyungju’와 ‘Gyeongju’가 같은 도시인지 다른 도시인지 헷갈리게 돼 있다.
서울 시청에서도 뒤늦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특별위원회까지 구성, 영문법과 스펠링이 틀린 부분 찾아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4명으로 구성된 위원회 멤버 중 3명은 정정 작업을 벌이고 한 명은 사인판 제작에 관여한 11개부터 관계자들과 시정 방안을 논의한다는데 사인판 하나 만드는데 무슨 11개 부처가 간섭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인들이 축 경기를 하며 쓰는 골인, 센터링, 크로스 바 등의 용어도 미국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식 영어다. 축구 용어야 우리끼리 쓰는 것이니까 상관없다 쳐도 10여년 전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가 간단한 영어 단어 스펠링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한대서야 망신이 아닐 수 없다. LA에서도 월드컵 후원 행사를 둘러싼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까지 이런 식으로 해 과연 국가 대사인 월드컵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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