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조기대선을 통해 앞으로 5년 간 대한민국 국정을 이끌어갈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재명의 삶은 ‘비주류’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경상도 깡촌 가난한 화전민 집안에서 ‘무수저’로 태어난 그는 정규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년공’ 출신이다. 검정고시를 거쳐 들어간 대학도 이른바 SKY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입학 4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된 그는 노무현의 영향을 받아 인권변호사 생활을 거쳐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
‘부패 기득권 타파’를 외쳐온 이재명 대통령의 61년 인생에는 ‘학연’ ‘지연’ ‘소속 집단’ 없이 관례와 관행, 기득권에 맞서 싸우다 역설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과정이 담겨 있다. 그는 지역적 기반이나 그 흔한 연줄 하나 없이 ‘단기필마’로 기초자치단체에서부터 시작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입지전적’ 혹은 ‘인간 승리’라는 찬사와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이재명은 오히려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공격과 비난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시민들의 호응과 지지를 받을수록 이런 공격과 비난의 강도는 더욱 높아만 갔다. 한국사회의 계급의식 구조에서 가장 낮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 출신이라 할 그의 정치적인 부상은 지배 엘리트 계층에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기득권층은 질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기존의 틀을 깨고 들어와 질서를 흔들고 판을 뒤집어 버리는 인물은 이들에게 거슬리고 불편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법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인 평등사회가 됐다고들 하지만 지배계층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계급의식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게 기존의 지배구조를 위협하는 인물의 등장은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다. 보수언론들은 이런 기득권층의 불안과 두려움을 앞장서 대변하면서 공격의 선봉 역할을 해왔다.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비주류였던 노무현이 2003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 보수신문은 이런 내용의 칼럼을 통해 그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드러냈다. “월드컵 우승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한민국은 하향평준화 됐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키웠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차마 정론을 표방하는 언론에 실린 것이라 생각하기 힘든 비유와 표현까지 써가며 깎아내리려 했을까. 노무현을 뽑은 국민들까지 싸잡아 모독하고 비하하며 화풀이를 해댔다. 노무현은 정치 역정 내내 주류 보수, 즉 기득권층과 불화했다. 힘 앞에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의 존재는 보수가 가장 중시하는 질서와 위계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처럼 경련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은 이런 노무현보다도 더 취약한 기반 위에서 정치를 해왔다. 그러니 기득권층과 보수언론 입장에서는 그가 얼마나 거슬리는 존재였을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불편한 심기와 정치적 살의는 이재명에 대한 끊임없는 ‘악마화’ 작업으로 표출됐다. 물론 이재명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에게도 많은 도덕적 약점과 흠결이 있다. 하지만 집요한 ‘악마화’ 과정을 통해 씌워진 이미지는 그의 진짜 모습과 거리가 멀다. 다행히 이런 악의적 공작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재명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선택했다.
무수저 출신인 이재명이 정치생활 내내 일관되게 표방해온 소신은 “강자의 폭력을 제지하고, 약자를 보듬어서 모두가 함께 사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은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뜻으로, 보다 평등한 세상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지사 시절 이 발언을 하자 보수언론은 “부유하고 권세 있는 자를 누르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돕자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반자본주의적’ 불순 사상”이라고 공세를 폈다. 딱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였다.
한국사회 지배엘리트, 특히 권력기관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일본군 하사관 멘탈리티’이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혹독하게 구는 기회주의가 그것이다. 한국의 현 기득권층이 일제 강점기를 통해 형성된 사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말 한 시민언론은 그해의 사자성어로 ‘억약부강’(抑弱扶强)을 선정했다. “약자를 누르고 강자를 떠받치는” 모습을 본 한해였다는 뜻이다. 권력기관들이 그랬고 보수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재명의 ‘국민주권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아직은 조용하지만 그렇다고 기득권층의 ‘억약부강’ DNA가 사라지거나 변형된 것은 절대 아니다. 잠시 숨죽이며 잠복해 있을 뿐이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모두 쥐게 된 정부인만큼 강력하게 국정 드라이브를 걸 것이 확실하며, 머지않아 기득권층과 보수언론은 ‘독재 프레임’을 내세우며 발목잡기에 나서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역사적 고비마다 현명한 집단지성을 보여온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층과 달리 국가적 상황이 요구할 때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김대중, 노무현. 이재명 같은 비주류를 망설임 없이 국가지도자로 선택했던 그 국민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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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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