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기자의 죽음은 지구촌에서의 문화 충돌 위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케하는 사건이었다. 펄기자의 죽음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이분적 논리보다는 지금 세계가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떻게 문화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가를 말해주고 있다.
펄 기자는 참수직전 이미 죽어있었거나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언론)에서는 마치 펄이 의롭고도 자랑스러운 유태인다운 죽음을 당한 것처럼 보도했다. "펄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아는 유태인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유태인이었고, 자신도 유태인이며, 자식도 유태일 될 것이라고 당당히 말해 자신의 죽음이 적어도 무슬렘에 의해 살해되는 서구인이 아니라 유대인임을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이다"라며 매우 감동적인 문구로 보도했다고 한다.
언론이 공정한 보도태도를 견지하지 못하면 그것은 비록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있다해도 바른 언론의 자세라고는 볼 수 없다. 하물며 요사이 문명 충돌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각 국마다의 국수주의에 편중된 편파보도이고 보면 문명 충돌을 이끌어 가는 제 일 원흉이 바로 언론이 아닌 듯 싶다.
본국(한국)에도 4대 신문을 비롯 수많은 언론들이 있다. 그러나 각 신문들의 정치면의 기사, 사설 등은 누가봐도 식상하고 뻔하다. 이미 처음부터 편가르기가 되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한 색깔론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한국의 대중들이 돈주고 사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가 언론을 대하는 것은 최소한 언론에 대한 객관성과 신뢰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펄 기자의 죽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도는 매우 유감스런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있어서의 ‘도박’이나 ‘윤락’등 필요악은 어쩔 수 없다지만 분리주의를 조장하는 ‘인종주의’나 ‘선민의식’등은 가장 치명적인 종양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것들을 호도하는 언론이야말로 더욱 치명적이다.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고 탈취한 곳이다. 소위 성지수복이라는 명목 하에 ‘시오니즘’을 외치며 피를 강처럼 흘렸던 곳이다. 이제 그만 성지에서의 다툼은 그쳤으면 한다. 성지에서의 다툼이 그치지 않는다면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간디와 같은 무저항 비폭력주의가 실현되는 곳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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