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희는 내가 한번도 "현희야!" 하고 불러본 적이 없는 아이다. 초등학교 5 학년 때 한 반이었고 한번도 불러 본적 없는 아이의 이름을 그리고 그 아이의 생김새를 서른이 넘어 버린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변두리 였던 옥수동에 있는 초등학교여서 특별히 잘사는 집이 없었던 만큼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다.
현희는 얼굴이 하얗고 단발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말이 없고 표정이 어두웠다. 지저분 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꽤재재 했다. 나는 그 어린나이에도 무척 교만 했었는지 현희를 마음속으로 많이 무시 하고 있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면서 개학을 하던 날, 그날은 정말 어수선한 날이었다. 다들 방학동안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그날 현희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기에 물려 뇌가 썩어서 죽었다고 했다. 반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현희가 뇌염으로 죽었다고 했다. 아무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을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그날 아무런 마음의 상처가 없었다. 6학년이 되고 어느날 방을 대청소 하고 쉬느라 누워 있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5학년 때 집으로 대출해온 학급문고를 리턴하지 않은 것이다. 김현희라는 이름이 적힌 책이었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현희가 책을 받으러 나타날 거 같았고 내심 내가 더러운 아이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한번도 아는척 하지 않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책을 빼들고 어떻게 할지 몰라 그냥 책장 뒤로 던져 버렸다. 책장 뒤로 던져진 책처럼 잊고 있던 현희가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가 모세기관지 염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현희를 기억해 냈다. 그 동안 내가 지은 죄로 내 아이가 아픈 것 같은 엄마의 죄책감 속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죄는 현희를 대했던 나의 마음과 리턴하지 않았던 현희의 책이었다.
알고 있었겠지.. 현희는 .. 내가 자기를 무시하고 따돌렸던 것을..
지금 생각하니 현희는 그냥 죽어 버렸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으로 그냥 저냥 그렇게 살다 초등학교도 마치기 전에 죽어버렸다. 난 지금도 현희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아직도 현희에 대한 사과를 하지 못한 거 같다.
현희에 대한 사과는 현희와 같은 모습을 가진 아이들에게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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