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LA한인타운의 어느 교회에서 자그마한 졸업식이 있었다. 나는 졸업생의 한명으로 앞줄에 앉았고, 나를 아는 농아교인들이 참석해 뒷자리 구석에 앉아 있었다. 식이 진행되자 나는 무의식중에 일어나 수화통역을 시작했다.
나는 거의 듣지 못하는 중증 난청자이기 때문에 농아자와 거의 같고 청중속에서 아무소리도 들려오지않는 고통을 늘 체험해왔기 때문에 농아자들의 고통을 잘 알고있다. 반면 보청기를 끼면 약간은 들리기 때문에 통역자가 없으면 스스로 나서서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내용을 알려주려 노력한다. 말하는 사람의 육성을 들으면 서 그의 입을 보고 통역하면 90%는 정확히 통역할수 있다.
내가 수화 통역을 하고 있는 데 갑자기 옆자리 동료가 앉으라며 내 옷자락을 잡어 당겼다. 졸업생일원으로서 이날의 주인공이니 일어나 예배를 방해하지 말라고 교사가 동료에게 귀띰을 했다는 것이다.
농아교인들은 왜 수화통역을 못하게 하느냐고 의아해하면서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했다. 몇년전인가 UCLA대학원 졸업식에서 졸업식순 전과정을 강단 위에서 수화통역하는것을 본적이있다. 알고 보니 한명의 농아 졸업생을 위해서였다.
농아자들은 수화가 언어이다. 하나님께서 입으로만 말하라고 하시지는 않았다. 손으로 얼마든지 의사표시를 하며 교회에서도 모든 순서를 수화로 진행한다.
일반 정상인들 가운데는 농아자들의 고층을 이해못하고 무조건 답답하고 상대못할 사람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수화를 조금 알면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것인지 체험할 것이다. LA에는 수화에 관심을 갖는 분들을 위해 수화클래스를 열어가르치는 곳이 4~5 군데 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없다.
농아인들은 사면 높은 벽에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 갇힌 듯이 답답하고 막막하고 괴롭고 슬프다. 겉으로 보기엔 대부분 잘생기고 단정하고 예의 바르며 일반 정상인과 다를바 없다. 그러나 들리지 않고 말못하니 그 속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 것인가.
요즘 불경기에 많은 농아교인이 직장을 잃고 있다. 대부분 바느질이나 청소, 목공일을 하지만 미술대학 나온 미술가도 있고 정규대학 나온 디자이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만족할만한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다. 혹 친지를 통해 취직을 부탁하면 “듣지도 못하고 말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써요?”하고 반문을 한다
이렇게 암담한 생활 가운데도 이들이 희망과 기쁨을 느낄 때가 있다. 교회에 와서 친구들과 만나고 수화로 대화하며 예배드릴 때이다.
농아교회가 있다는 것은 이들에게 큰 기쁨과 위안이 된다. 우리 교회는 벌써 창립22주년을 맞이한다. 우리 부부가 이민오면서 바로 아파트에서 시작한지 22주년이 되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농아자들에게 말씀을 들을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될것이다. 농아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수화를 금지하는 불행한 일이 일반교회나 집회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경애/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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