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5년의 노일전쟁 당시 평양의 한 거리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거리에는 일단의 일본 군대가 대검을 장착한 총을 어깨에 얹고 행진하고 있었으며 그 옆에 상투머리의 한 한국인이 지게를 멘 채 멍하니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게에는 몇 가지 가재도구와 문짝 하나가 얹혀있었고 사진 배경에는 납작한 기와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매우 초라한 우리나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북가주 소노마에 있는 잭 런던 기념관에서 봤던 사진이다. 런던이 1900년대 초 어느 샌프란시스코 신문의 특파원으로 극동에 가 있을 때 찍은 것이다. 벌써 몇 년 전에 본 사진인데 아직까지 내 기억에 선히 남아있다.
런던이라면 존 스타인벡과 더불어 손꼽히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소설가다. 그의 대표작품의 하나인 ‘야생의 부르짖음’(The Call of the Wild)은 어떤 개가 알래스카 골드러시의 탐험꾼 들의 썰매 끌이로 팔려서 황무지 빙판 위의 처참한 생존환경에 내몰리지만 그 극한적 역경을 강인한 체력과 기력으로 이겨나가고 끝내는 늑대 떼 속으로 섞여 들어가 그들 위에 군림하기까지 야생의 강성을 성취해 간다는 내용이다.
한 개의 억센 생존능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얘기에서 독자들은 약육강식의 현장을 보고 거기에 담긴 런던의 메시지, 즉 살기 위해서는 강하게 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의 이 지론은 현대 무한경쟁의 인간사회나 국제관계 속에 사는 우리에게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런던의 이 지론이 반영된 것일까? 문제의 평양 거리 사진은 강자와 약자를 묘하게 대조시키고 있어 보였다. 물론 강자는 러시아를 상대해 싸울 만큼 강한 일본군인들이고 약자는 그들에게 국도를 유린당하는 우리다.
나는 이 사진의 한국 남자에게서 100년 전 우리 조상의 나약하고 서글픈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남자의 상투머리나 허름한 옷차림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보다는 그의 방관자적인 자세, 바꾸어 말해 자기의 살림도구 같은 사유물은 소중히 여기면서도 자기 나라를 강점하려는 일본 군대가 자신들의 거리를 마음대로 행진하고 있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만 있는 모습 말이다. 이렇게 나라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던 조상 탓에 그 후손인 우리는 한때 나라를 빼앗기는 민족적 고난을 겪었고 지금까지 민족 분단의 서러움을 겪고 있지 않은가 하는 안타까움과 한스러움이 그 사진 앞에 섰던 내 가슴을 짓눌렀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대 전환기에 있다. 며칠 후로 대통령 선거가 열리면 새 대통령이 나온다. 어느 분이 될까 미국 동포들에게도 지대한 관심사다.
다만 좋은 대통령을 뽑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새 대통령을 잘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자 중 어느 쪽이 되든 그 사람을 밀지 않은 많은 국민들이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대통령이 선출되면 그 날부터 모두가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합치고 협력해야한다. 자기가 원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싫어하고 비협조적으로 임하는 것은 지각 있고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의 할 도리가 아니다. 이 점은 정치 일등국인 미국 사람들에게 우리 국민이 한 수 꼭 배워야 할 덕목이다.
팔로워십(Followership)이라고 했던가. ‘추종정신’ 또는 ‘순응력’으로 해석될 이 말을 기억해 볼 때다.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새 대통령의 역할이라면 그 대통령을 잘 ‘따라가는’ 팔로워십을 넉넉한 마음으로 세워 나가는 것은 우리 국민들 각자의 당연하고도 자랑스러운 몫이다.
노재민
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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