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주인공 나옥분(나문희)은 영어 공부에 절박하게 매달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미국 의회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온전히 자기 목소리로 진실을 알리는 것이 그의 계획. 마침내 증언대에 선 그는 또박또박 영어로 증언한다. 그리고 일본을 향해 토하듯 말한다. “’I’m sorry.’ Is that so hard(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 영화는 인권운동가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7) 할머니 이야기다. 그는 2007년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일본군 만행을 최초로 증언했다. 영화와 달리 이 할머니는 영어를 하지 못해 통역을 거쳤다.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실상을 알리고 일본의 헛소리를 물리치려면 그래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한국과 미국 연구자들이 피해자들의 입말, 토속어까지 살린 영문판 구술 증언집 ‘한국인 위안부들의 목소리(Voices of the Korean Comfort Woman·2023)’를 펴낸 이유다.
■ 쿠팡은 거꾸로 언어의 철벽을 쳤다. 김범석 의장 등 핵심 증인들을 대신해 17일 국회 개인정보 유출 청문회에 나온 미국인 임원들은 “한국어를 몰라서 소통이 어렵다”며 모르쇠 전략을 폈다. “I am sorry that I don’t speak Korean(한국어 못해서 미안)“이란 답변으로 의원들의 질의 의지를 꺾었고, 국회를 우롱하기로 작정한 듯 “김범석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Happy to be here(여기 나오게 돼 기쁘다)”라며 딴청을 피웠다.
■ 쿠팡이 그간 한국어로 내놓은 해명도 ‘아무 말 대잔치’이기는 마찬가지. “정보 유출이 아니라 노출”이라고 우기는가 하면, “김 의장은 170여 국가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기업 최고 경영자로서 비즈니스 일정이 있어서 청문회에 불참한다”는, 독해가 어려운 이유를 댔다. 쿠팡의 딴소리는 결국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보 유출을 제대로 배상하지 않고, 노동자를 죽이는 시스템을 고치지 않기 위해서. 쿠팡에 다시 묻는다. 영어로. “’I’m sorry.’ Is that so hard?”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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