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 역사에 ‘무혈혁명’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고졸 학력에다 당선보다는 낙선을 더 많이 했던 노당선자, 대선과정에서도 세 번에 걸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펼쳐야 했던 고전 끝에 기어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노후보의 당선은 새로운 사회와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에서 그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 대선 마다 단골 메뉴였던 북풍이나 네커티브 켐페인이 거의 힘을 쓰지 못했고,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정책적 이슈가 더 많은 주목을 끌었다. 보수적인 제도권 언론에 맞선 새로운 미디어 매체인 인터넷 언론도 노후보 당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노후보의 승부사적 기질이나 켐페인 전략도 돋보이는 선거였다. 이회창후보가 대세론에 안주하며 철새 정치인을 끌어모으는등 구시대적 방식에 의존한 반면, 노후보는 새로운 이슈를 제시하며 선거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어 갔다. 막판 정후보의 지지철회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도박에 가까운 정몽준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끌어 낸 노후보의 승부사적 기질도 높이 살만 하다.
노후보의 당선으로 이회창후보의 정계은퇴는 물론 한국 정치는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3김시대는 자연스런 종말을 고했고 정책적 비전보다는 반DJ정서로 뭉쳐있던 한나라당 역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의외로 빠른 시일내에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노 당선자가 ‘무혈혁명’을 성공적인 사회개혁으로 이끌수 있느냐는데 있다. 선거 캠페인과 대통령직 수행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이며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노당선자는 변화와 새시대를 갈망하는 한국사회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엄청난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한미관계와 북한문제는 조속히 정책적 입장을 정리해야 할 부분이다.
반미는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노당선자는 한미 관계에 있어서 당당하고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여러번 공언했고 이는 젊은 세대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힘의 균형에 있어 미국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된다.
최근의 반미현상이 외세에 굴욕적인 입장을 갖지 말고 좀더 민족적 자부심을 갖자는 면에선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쇼비니스트적인 민족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초석을 다지긴 했지만 국민들의 불만을 샀으며 미국과의 공조문제에서도 불협화음을 가져왔다.
포용정책의 기본적인 틀을 견지하면서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미국과의 정책을 조율하는 문제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엄청난 공약이 선거전의 이슈를 선점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과연 이를 큰 무리없이 시행할 수 있는냐 하는 점도 노정부의 과제로 남아있다. 기업인들의 우려도 해소해야할 부분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통합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지역갈등은 물론 이번 선거을 통해 노출된 이념적, 세대간 갈등도 노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부가 개발독재 세력을 대표했다면,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민주화 세력을 대표했다. 노무현 정부는 지역간, 세대간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국민통합의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경험과 안정보다는 변화와 실험을 선택했다. 노무현의 ‘무혈혁명’이 단순한 정치 실험으로 끝나지 말고 21세기 한국을 리드할 수 있는 큰 정치와 정책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 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국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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