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한국의 대선은 노무현 새 천년 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역대 어느 대통령 선거보다도 깨끗하고 부정부패가 없는 공정한 선거였다.
원색적 비난과 철새정치인들의 이합집산, 막걸리 선거니 고무신 선거니, 5당4락(5억 쓴 사람은 되고 4억 쓴 사람은 떨어진다고 하던 구시대의 유행어)이니 하던 혼탁한 모습도 줄어들었고 창당방해 사건처럼 조직 폭력배를 동원한다거나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 공무원들의 집권당 편들기 같은 일련의 구태 정치도 없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노무현 후보와 손을 잡은 정몽준 후보의 대선 마지막 날, 그것도 몇 시간을 앞두고 노 후보의 지지를 철회한다는 발표였다. 유권자들의 눈에는 다분히 경솔하고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 듯한 인상을 준 선언이었다.
국민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를 결정하고 정 후보가 패했을 때,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노 후보의 승리를 축하해 주면서 이번 16대 대선에서 러닝메이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정몽준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라 앨 고어가 부시대통령에게 억울(?)하게 패하고도 승복했던 것처럼 정몽준 답다고 박수를 보냈다.
정치판이란 언제나 선진국 후진국이 선거기간에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그것은 선진국에서는 패자가 자신의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승자를 축하해주며 국익을 위해 함께 미래를 생각하지만, 후진국에서는 좀처럼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국가와 민족보다는 개인의 이익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16대 대선에서 보여준 정 후보의 선택은 최악이었다. 어떤 속사정에서 그러한 선택을 했던 간에 국민과 유권자들은 그가 월드컵 때 보여준 능력과 인기에 크게 실망했다. 자택에 칩거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하기를 거부한 모습은 한때 대통령을 꿈꾸었던 후보로서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18일 두 가지 빅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한다는 발표였고 다른 하나는 최진실과 조성민의 이혼 발표였다. 발표 당시 최진실은 임신 중이었다. 대선을 하루 앞둔 시점의지지 철회는 출산을 하루 앞둔 임산부와 같은 노 후보에게 이혼하자고 선언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에게 임신 중에 이혼하자고 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굳이 이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적어도 출산의 고통에서는 벗어난 다음에 해야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번 대선에서 노 후보의 당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소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무현 당선자의 말처럼 “바른 길을 간 정치인들은 모두가 좌절과 실패로 얼룩진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었지만 나는 바른 정치를 하고도 성공하는 선례를 남기겠다”고 한 발언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거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장인의 좌익 전력이 문제가 되자 노 후보는 구차하게 변명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유권자들을 향해 “그렇다면 내가 아내를 버리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만 되게 해준다면 아내 열 명쯤은 미련 없이 내다 버릴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대통령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어떻게 아내를 버릴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던 노 후보의 한마디는 한국 땅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가슴에 새겨 볼만한 일이다.
최 종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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