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가 일망무제로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절에서 대지 스님은 살고 있었다.
봄날을 당하여 방문을 활짝 열어제치고 따뜻한 햇볕과 찬란한 산천을 느끼고 있는데 상좌 스님인 한암이 온종일 절 마당을 분주히 오가면서 눈길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대지 스님은 한암을 불러 세우고는 부탁하되 저 앞 바다에 배가 너무 자주 오고가니 정신이 산란하다. 저 배들을 치워다오 하니 한암이 냉큼 섬돌에 올라 문을 닫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한암은 이렇게 총명하고 일에 민첩한 재주 있는 스님이었다. 총명하고 민첩하며 남의 귀여움도 많이 받고 일도 많이 맡아하게 되니 보상도 많아져서 돈이 많이 생기게 되어 스스로 더욱 분주함을 재생산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지금의 지식 노동자들이 대부분 영리하고 민첩한 것과 같으리라. 대지 스님은 다시 문을 열고 돌아가는 한암을 불러 세워 엄중하게 힐책을 쏟아 놓으니 이 미련한 중생아 그렇게 분주를 떨면서 방문을 닫는 수고를 할게 무어냐, 그냥 말 한마디 스님 눈감고 계십시오 하면 될 것을.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은 한암은 일체의 분주함을 물리치고 쉬고 또 쉬어 대도를 훗날 성취하였다.
여기에 또 다른 본보기도 있다. 옛날에 위산 스님과 오봉 스님과 운암 스님 셋이서 산철을 맞이하여 백장 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백장 스님이 셋을 향해 말하기를 나는 원래 분주한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니 혀와 입술을 놀리지 말고 할 말이 있으면 하고 가라. 이에 위산이 공손히 대답하되 그렇지 않아도 혀와 입술을 놀리지 않고 말하는 법을 스님께 한번 여쭈어 보려고 하던 차입니다. 큰스님께서 혀와 입을 놀리지 말고 먼저 한 말씀 해 주십시오 하니 백장 스님이 미소하고 방문을 열고는 세 스님이 물러가는 일을 손수 도왔다.
세 번째 얘기는 병든 수행자의 슬픈 사연이다. 중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는 밧칼리라는 자기의 병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이 생에 마지막 소원으로 부처님을 다시 한번 뵙고 그 발에 엎드려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즉시 그를 찾았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수행자의 앙상한 손을 잡고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대 밧칼리라여 이 나의 늙은 모습을 한 번 보고 또 흙먼지 투성이인 나의 맨발에 예배한들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늙고 병이 드는 이 몸은 덧없는 것이니 욕심을 떠나고 분주함을 쉬어 해탈을 얻어야 한다. 법을 보면 나를 보는 것이니 나를 보고자했던 그 소망으로 법을 보아라.
부처님은 맨발로 걸어서 처소에 돌아오는 길에 뒤따르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오늘 나의 이 문병이 잘된 것이냐, 그의 절망에 위로가 되었겠느냐, 그는 일어나 밥을 좀 먹게 되겠느냐, 그는 무상을 깨쳐 편안함을 얻을 수 있겠느냐. 뭇 삶을 애민해하는 부처님의 말씀에 모든 제자들은 주저앉아 울었다고 불경은 전하고 있다.
부처님은 사십년 동안을 한결같이 단 한가지 물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했다. 그대는 참으로 덧없음을 아는가. 이 물음은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어야 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은 사람들에게는 끊음의 덕을 종종 볼 수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능히 자족할 수 있고 또 자족함을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도 뉴튼의 관성의 법칙을 따라 팽창하고 증대하는 현상이 심한 것이니 욕망을 줄이고 분주함을 아끼지 않으면 괴로움과 고통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마음은 일이 없게 하고 일에는 마음이 끼여들지 못하게 하여 분주함을 떨쳐내고 덧없음을 깨닫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정녕 일장춘몽일까 하여 봄꿈을 꾸어본다.
이윤우/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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