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간 관계악화와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라는 경제적 난국을 안고서 5년 전에 취임하였다. 실업자, 무숙자가 거리를 메우는 혹독한 경제적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세계가 찬탄하는 경제 회생과 고도 성장으로 한국은 번영을 누려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 정권들에서 조성된 첨예한 남북 긴장관계가 햇볕정책 이라는 유화정책의 추진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금강산 개발, 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 물적 교류가 촉진되어 한반도의 정치적 안정이 이룩한 소산이라 하겠다.
즉 북의 위협이 6.25동란 후 가장 감소하였던 탓으로, 경제 성장에 큰 장애요인이 상당히 제거되어 경제적 번영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에서 민주당 대통령이 선출되었더라면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실현되어 햇볕정책은 국제적인 성원 속에 찬란한 결실을 맺어, 물적 인적 교류는 물론 북한의 개방과 개혁이 촉진되어 한민족 화평과 공존공영에 민족사적인 초석이 되었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반전이었다.
이러한 국제 정치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김 대통령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가 미국과 북한의 극한적인 대치 상황에서도 남북간의 분쟁을 억제하고, 오히려 역사적인 남북간 육로가 개통되기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은 30여년간의 군부독재 통치에 맞서 수 차례의 사선과 망명, 핍박을 겪으면서도 국민의 기본권 신장 등 한국의 민주화를 쟁취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을 차치하고라도 그의 이러한 초인적인 헌신과 기여만으로도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과 업적에 비교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열찬 민주화 투쟁과 군사정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그를 제거하려는 쿠데타 세력과 기득 보수세력이 조장한 지역감정이 오히려 그에게 지역감정 조장자 그리고 용공주의자라고 많은 한국인들 속에 각인되어 반 DJ 세력이 크게 형성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그들이 그의 개혁이나 한반도 정책에 사소한 사건이나 부작용을 문제삼아 그를 폄하, 질타하면서 모든 것을 반대와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적으로는 존경과 찬탄을 받는 김대중 대통령이 국내에서는 무시당하고, 비하되는 인물로 평가 절하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욕이 얽힌 5년 동안은 해방 후 최고의 남북 화해의 시대였으며 경제 또한 구조조정의 결과 경제난국을 넘어서 호황을 누렸으며 국민의 기본권은 최대한 신장되었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과는 향후 남북관계의 인적 물적 교류의 진전 상황, 한반도 핵 위기를 둘러싼 분쟁의 해결 과정, 한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따른 삶의 변화 등에 따라 기억되고 역사에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
김창덕/토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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