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부른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공식 명칭엔 어디에도 아름다운 뜻을 담은 표현은 없지만, 서구 물질문명이 제국주의의 명찰을 달고 아시아에 밀려올 무렵부터, 꺼져 가는 등불과도 같던 대한제국에게 태평양 건너에 있는 커다란 나라 아메리카는 다른 서구의 열강과 달리 왕실을 핍박하지 않았던 마음씨 착하고 넉넉한 나라로 받아들여졌다.
더구나 외국인을 정중히 맞아들이는 풍습에 따라 이왕이면 좋은 이름을 붙여주려는 오랜 관습도 한몫 했을 것이다. 미국이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면 정든 고향과 이웃을 두고 이역만리 낯선 곳으로 떠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옛날, 한자 문화권에서는 함께 나누어 먹을 게 많은 것이 아름다움이었다. 미(美)란 글자를 풀어보면 양(羊)이 큰(大) 걸 나타내고 제물의 풍요로움에서 고대 아시아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풍요롭고 넉넉한 이미지를 보름달에서 찾듯이 미국은 그렇게 크고 넓은 아름다운 낭만적인 나라로 비쳐져 왔다.
그러나 국민의 상당수가 세계지도에서 위치도 지적하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 전쟁을 시작하고 수천 수만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나라, 미국을 그 누가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십여년 전 LA 폭동이 일어나기 전, 서울을 처음으로 방문한 시카고 트리뷴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때도 미국과 세계 경제가 좋지 않을 때였는데, 그 기자는 미국의 경제가 좋고 나쁨에 따라 미국의 얼굴이 바뀐다고 걱정을 했다.
미국의 경제가 좋으면 마음씨 착한 세계의 경찰을 노릇을 하다가 경제가 나빠지면 일그러진 얼굴로 못된 짓을 자행하는데, 밖에서 싸울 거리를 찾지 못하면 안에서 종종 인종폭동 같은 게 터진다고 역사를 들어 전쟁과 내부 폭동의 흐름을 설명해 주었다.
그 주기가 전 세기 초 중반에는 20년 단위였으나 점점 짧아져서 최근에는 10년 단위로 폭동과 국제 전쟁이 일어났다. 요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미국이 어떠냐고 물으면 무섭다고도 한다. 아름다운 나라가 어째서 무서운 나라가 되었을까.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했을 때, 존슨 대통령은 미국의 가장 추악한 것이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앗아갔다고 언급했다.
총으로 남의 생명을 없앨 수 있는 문화를 배경으로 무기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거래하는 나라, 주기적으로 인종폭동이 일어나며 수천 수만의 생명이 죽어 가는 전쟁 현장도 생중계로 보여주는 나라를 어떻게 불러야 옳은가. 혼미할 뿐이다.
나의 처지와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조건과 환경을 새로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으면 안될 때다. 나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 무엇을 했으며 전쟁으로 무엇을 얻기를 기대했는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의 시선으로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가. 제 몸에 맞게 효과적으로 장착한 장비를 지니고 진격하는 전투병의 표정과 몸에 맞지도 않는 헐거운 옷을 입고 큰 눈에 슬픔을 가득 담은 다른 편 병사들의 모습은 대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더 이상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아름다움을 회복할 때까지 혼미한 나라, 미국(迷國)으로 부르는 게 마땅하게 여겨진다.
김석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UC어바인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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