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이들이 첫 대면에서 나눈 대화는 양국간 미사일 방어체제나 러시아의 나토 가입, 발칸반도 분쟁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이들은 바로 종교, 즉 기독교의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오랜 지기처럼 나누었다. 그런가하면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마케도니아 대통령을 자신의 개인 서재로 초청, 함께 무릎을 끓고 기도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뉴스위크 최근호(3월10일자)는 부시 대통령을 근래에 가장 종교적인 대통령(Most Religious President of Recent Times)이라고 서술했다. 유엔 안보리가 대이라크전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오렌지 경보가 발효된 워싱턴 DC의 시민들이 창문을 막을 덕 테입을 사기 위해 하드웨어 상점으로 달려가던 아침에도, 부시 대통령은 하나님은 모든 생명과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묵상했다고 이 기사는 전한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신의 축복을 구하고, 정치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관을 구현하고자 노력해 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독실한 침례교 신자로 알려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인들의 손에 되돌려 준 것은 국가적 이익보다도 기독교인으로서 그의 양심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처럼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고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을 설파했던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부시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감리교인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서는 오히려 근본주의적 억양이 많이 묻어난다. 부시 대통령의 막역한 지기인 단 에반스 상무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신앙은 그에게 단순한 자신감 이상을 준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신앙을 통해 남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과 선악에 대한 선명한 개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부시 대통령의 사명감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악(evil)으로 규정하고, 이번 전쟁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한 해방 전쟁으로 선언했다.
나는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선언이 중동 지역에 얽힌 미국의 정치적 이해타산을 미화하기 위한 수사로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전쟁 지지를 표명한 일부 보수주의 종교 지도자들이 언급했듯이, 이 악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며,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믿을지 모른다.
신학자도 성직자도 아닌 내가 바른 기독교인상을 논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인은 예수가 보여준 삶의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일진대, 군중들에게 악을 무찌르자며 전쟁을 부르짖는 예수의 모습은 결코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게 떠오르는 예수의 모습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떠는 아이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여인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는 모습이다.
진지한 자기성찰과 고뇌가 뒷받침되지 않는 신앙은 독선으로 흐르기 쉽다. 이번 전쟁으로 부상자와 난민, 고아가 74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며 신의 뜻과 인간의 뜻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라크전은 과연 피할 수 없었던 전쟁인가, 그리고 그것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자유와 복음을 안겨다 줄 성전인가.
한수민 <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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