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트고 있다. 목련의 검은 가지에서 꽃몽우리들이 방싯 몸짓을 부풀렸다. 노란 개나리는 아직 소식이 없는데 양지바른 뜰 한 귀퉁이 라일락 여윈 몸에서도 10대 여드름 같은 입질이 보송보송 나왔다. 목련의 맹아리와 라일락의 그것 사이는 무엇이 다를까. 다만 크기의 차이 뿐일까.
전운이 온 지구를 덮고 우리의 피들까지 스물스물 염치없이 들어와 공포와 불안의 채무를 묻는다. 50마일 속도로 부는 사막의 폭풍(그 바람으로 하여 연합군의 진격에 도움에 준다지만..), 각 미디어에 나타내는 그 핑크 빛 붉은 먼지바람은 온통 핏빛이다. 우리는 불안하다, 분노한다, 근심하고 염려한다. 그리고 아리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만큼 어떻게 이 일에 연대의식을 갖고 행위하고 있는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가, 아니면 강 건너 불인가, 우리가 품어 안은 심정은 절박함과 참여의 정직한 희망과 믿음의 강도와 진정성에 따라 우리의 역사는 정화되고 바로 서고 그리고 미래는 보다 정의로운 터를 닦을 것이다.
내가 참여한 그만큼 나의 가정과 나의 가정과 나의 커뮤니티와 국가는 보상을 쟁취할 것이다. 바로 옆,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그 사람이 고통하고 고통이 지나쳐 절망하고 있는데 희망의 언어조차 한번은 들은 적이 없는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나 어찌 지금 봄이 온다고, 5월의 만개한 라일락을 그리며 안타까워 할 수 있으리.
그러나 봄은 이미 딱딱한 겨울의 겉옷을 벗고 목련도 라일락도 찬란한 5월의 예감을 트고 있다. 여기 희망이 있다. 거기 우리 서로 껴안아 품은 인간의 정이 있다. 서로의 뺨을 닦아주는 노란 리본이 있다.
우리가 모르는 전운의 앞길과 양극의 질서가 엇갈리는 이 봄 ‘잔인한 4월’은 여지없이 자연의 꽃다발을 안고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희망을 갖자. 자연에서 평화의 의미와 용서, 희망을 배우자, 서로를 향한 신앙을 갖자. 내 기도와 내 희망의 씨앗이 겨울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리고 연초록 생명이 돋는 것은 생명의 부드러움이다. 증오와 분노, 염려는 생명의 활기찬 길을 막는 딱딱한 껍질이다. 혼돈의 회오리바람 한 가운데서도 전진하는 길이 보인다.
전쟁의 언덕과 증오와 오해의 골짜기 너머에 솟아나는 새 아침의 역사의 장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부드러운 4월이 더디 오는 잔디풀밭에는 세계 역사가 스쳐온 질곡마다 가시덤불에 피가 낭자하던 잔인하고 혼돈의 밤에서 기필코 떠오르던 은빛 희망의 암시와 교훈이 있다.
순간마다 연초록 빛은 짙게 흐르고 있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가 이리도 그리워하며 보고파 하는 자유와 평화의 목련의 꽃몽우리. 라일락 잎이 침묵 속에서 만개의 5월로 가고 있듯이.
4월이 가고 5월이 오면 라일락 나무에 꽃이 피고 온 천지에는 등불을 켜듯 모든 인간의 가슴에도 100개 1,000개의 노란 리본이 당당하게 빛났 으면...
곽상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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