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장류 학자들 중 하나인 제인 구덜이 40여년 전 탄자니아의 밀림에서 침팬지에 대한 현지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침팬지는 그저 영리한 원숭이들 중의 한 종류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 이후 그녀의 끈기 있는 관찰로부터 밝혀진 침팬지의 행동 유형은 학자들로 하여금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했을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채식과 육식의 혼식 습관, 조직적인 사냥의 능력, 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 구성원을 위한 이타적인 행위, 카니발리즘, 다른 집단과의 조직적인 전쟁, 구성원들 간의 주도권 쟁취를 위한 정치적인 동맹, 도구의 제작과 사용 등은 그녀가 처음으로 관찰한 침팬지의 일상 행동들로서 이들이 불의 사용 이외에는 원시인들이 행하던 거의 모든 종류의 일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과 동물간의 원초적인 벽이 그리 두꺼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 주는 것이 그녀의 업적 중 하나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그렇다 하고,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는 어떠한가? 학자들에 따르면 문명의 발상지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데스 강 사이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평야로 되어 있다. 바로 지금 미국이 승리를 구가하고 있는 이라크의 땅이다. 대강 1만3,000년 전에 그곳에서 농업이 시작되었고 약 6,000년 전에는 일종의 도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해부학적으로 현대인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인류가 처음 등장한 것이 약 13만년 전인 것을 생각해 보면, 후하게 보아도, 우리는 우리 존재의 전체 기간 중 겨우 10분의1을 문명의 영향 밑에서 살아온 셈이다. 참으로 눈부신 발전을 그동안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현대인의 사람됨의 약 90%는 아직도 야만의 바탕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회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터져 나오는 야만적인 행위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자아가 없어질 때에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이 능히 해내는 잔인한 행위(나치의 유대인 학살, 일본군의 남경학살 등이 생각난다), 법의 통제력이 일시적으로 없어졌을 때 나오는 군중의 수치심 없는 약탈과 파괴 행위(우리가 생생하게 지켜본 LA 폭동, 이라크에서의 약탈) 등은 제인 구덜이 참을성 있게 기록해 놓은 침팬지들의 행위와 과히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큰 눈으로 보아 순간적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문명의 겉치레를 벗어 놓고 단순히 본능이 지배하는 야만의 상태로 돌아가는 군중과 집단은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문명의 기간이 인류 존재 기간의 10%에 불과한 것을 고려할 때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것은 문명의 가면 뒤에서 문명의 이기와 제도를 사용하여 힘과 부의 독점을 폭력으로 이루려 하는 지도자들이다. 우습게도 제인 구덜의 연구대상인 침팬지의 사회는 부(먹이와 암컷)와 힘(구성원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을 폭력을 통하여 독점하는 소위 알파 메일과 그를 도와주는 동맹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 역사는 그러한 지도자와 그러한 지도자를 둘러싼 집단으로 점철되어 있다. 20세기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세계는 그러한 지도자들의 횡포를 벗어나는 듯이 보였다.
공산 진영이 무너지고 많은 국가들이 민주적인 체제 밑에서 시장경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제 겨우 3년이 지난 21세기는 불행히도 다시금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듯하다. 귄터 글라스가 며칠 전에 말했듯이, 세계인이 힘들여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놓은 시지프스의 바위는 다시금 산밑에 내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철회 (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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