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에 있는 재키 로빈슨 볼팍은 전형적인 시골 마이너리그 야구장이다. 위압감마저 드는 초현대식 메이저리그 구장과 달리 아늑하게 느껴지는 아담한 사이즈에 시골 장터처럼 친밀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 이 구장 조명탑 밑에 물수리(Osprey) 한 쌍이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부지런히 인근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다가 새끼들을 먹였고 구장에는 이들이 식사를 마친 후 버린 생선뼈들이 심심찮게 발견됐다. 주민들은 아빠 새를 아지(Ozzy), 엄마 새를 해리엇(Harriet)으로 이름짓고 이들 가족을 구장의 명물로 사랑했다.
그러나 이 행복한 패밀리에 예고 없이 불행이 닥쳤다. 아빠 아지가 난데없이 날아온 야구공에 맞아 크게 다쳐 결국 죽고 만 것. 공 던지는 것이 직업인 투수가 둥지 옆에 앉아 있던 아지를 향해 한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볼을 던져 맞춰 떨어뜨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분노 여론이 들끓었다. 팀은 징계가 아니라 보호차원에서 그 선수를 서둘러 먼 지역으로 옮겨보냈으나 팬들의 분노는 식을 줄 몰랐다. 주 검찰은 해당 선수를 동물학대죄로 정식 기소했다.
지난달 발생한 이 스토리는 조그마한 시골동네에서 일어났으나 얼마되지 않아 전국, 아니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아빠를 잃은 물수리 가족에게 동정을 보내며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이들 가정을 파괴한 선수에 대해 분노했다. 한인들도 그런 감정은 마찬가지였으나 한가지 사실 때문에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이면 문제의 그 선수가 한인이었던 것. 이 때문에 심지어 일부 한국 언론은 이를 큰 문젯거리가 아님에도 문화적 차이로 인해 한인 선수가 애꿎은 피해를 받고 있다고 몰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철없는 어린아이가 새를 향해 돌팔매질하는 것과 성인이 된 직업선수가 야구장에서 고의적으로 동물을 향해 공을 던진 것은 다르다. 더구나 문화적 차이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도의 차가 있을 지 몰라도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으면 똑같은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이것을 굳이 문화적 차이라고 강변한다면 그것은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것 밖에 안 된다.
류제국(19)은 2년 전 160만달러를 받고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유망 투수다. 시속 96마일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크게 될 선수라면 위기에서 큰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냥 사태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큰 오산이다. 언젠가 그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온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대답해야 할 질문이 바로 ‘물수리 사건’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 동 우 <특집 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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