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를 대충 훑던 나는 무심결에 한 화보에 눈길이 멎었다. 군복에 철모, 반자동 개인화기로 중무장한 채 바그다드 시가 한복판에 버티고 선 미군병사, 그리고 그의 코앞에 바싹 다가들어 손가락을 휘두르며 삿대질로 뭐라 고함지르는 한 이라크 남자의 성난 모습.
‘그 사람, 정말 겁도 없군!’ 속으로 탄복하며 사진 설명에 눈길을 준다. 수돗물도 전기도 끊긴 전시상황에서 지연되는 복구사업에 항의하는 바그다드 시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지난해 10월 이라크 대통령 선거를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100% 지지를 뽐내던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바트당이 만 6개월만에 깡그리 와해됐다는 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정권 유지를 위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 수단으로 철권을 휘둘러야 하는 조직세계에서 맹목적 전체주의의 집단적 광기는 그 힘의 진원지가 와해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장이다.
전체주의 사회, 독재체제는 언뜻 보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듯하지만 일단 그 마각이 벗겨지고 힘을 상실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무력하고 허수아비 같은 허구였는가를 명료하게 보게 된다.
독재체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거목이지만, 실체는 뿌리 없는 나무이다. 언제라도 가지가 마르고 넘어질 위태로운 나무일뿐이다. 반면 민주주의, 자유주의 체제는 겉보기와는 달리 ‘뿌리 깊은 나무’이다. 전자는 외강내유인 반면 후자는 외유내강이다.
미국, 어떻게 보면 오합지졸 같은, 뭔가 결속을 다지고 국민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없어 보이는, ‘어중이떠중이’의 이 합중국을 하나로 묶어 세계에 우뚝 서게 하는 힘은 뭐니뭐니 해도 민주주의라는 더디 자라는 나무에 국민 모두가 참을성 있게 물을 주어 가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최근 한국에 나가 서울의 어느 호텔에 묵었던 한 재미동포가 주한 미대사관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편지는 그를 감동으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유사시 연락처와 긴급 대처방법이 상세히 적혀 있더라는 것이다. 북핵 문제와 맞물린 난국에 처해 자국민을 보호하자는 미국 국가의 자상한 배려와 씀씀이에 그 재미동포는 감격했을 것이다. 문득, 년 전, 중국에서 마약사범으로 체포돼 본국 정부는 물론 현지 공관의 여하한 손길도 못미친 채 사형집행을 받은 재중 한국 동포 이야기가 떠올랐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재자 앞에 마치 꼭두각시 마냥 그의 손끝 움직임에 따라 열광하고 숨죽이던 그들이, 이젠 총을 든 군인 앞에 겁도 없이 달려들고 반미구호까지 외쳐대다니!
정말 민주주의가 좋기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라크 국민들의 데모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 척박한 민주주의의 불모지, 동토에도 이제 자유 민주주의의 훈풍이 불어 민주주의가 움트는가 기대해 본다.
복권당첨으로 갑자기 부자 되어 온갖 외적인 조건을 갖춘다 해서 그가 당장 상류사회 인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민주주의의 길은 멀고 험난한 길,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정녕 바그다드의 봄은 오는가!
배시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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