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말해서 한국은 유행 문화국이고 나쁘게 말해서 유행병자를 수용하고 있는 유행병자 병동이다. 모국이 그리워 모처럼 한국으로 나들이를 가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탤런트 같이 두껍게 화장을 한 서울의 여인들이 미주 여성들을 보고 촌뜨 기 같다고 한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에 와서 살면 미국의 환경이 생활을 내주고 그 생활태도가 생활 습관을 다시 세워준다. 유행이 있더라도 의식하지 않고 또한 유행 그 자체가 요란하지 않은 미국의 생활환경이 인간으로서의 다 다른 인간상을 허락하고 있다.
사시사철 바뀌는 철새같은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불평을 몰고 다니던 딸을 달래다 못해 가난한 살림살이에 허덕이던 가장이 자살을 했을 만큼 한국의 유행병 병세는 해마다 그 바이러스의 강도가 더 강해진다.
그 강력한 유행병 덕분에 쓰러져가는 외국기업들이 다시 살아난다. 한국에서 비방을 발견하고 그 비법을 사용하여 배를 두드리는 기업이 됐다. 이탈리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어느 옷 제조업체는 문을 닫을까 말까 하다가 요새는 일거양득의 소득을 올리면서 눈웃음 너털웃음이 넘치고 거기에다 뒷전에서 코웃음까지 웃어가며 일취월장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사람들의 큰 몸집에 비하여 체구가 작은 한국사람들 몸에 맞추어 옷을 만드니 우선 원단 구입에서 비용이 절감되고 같은 양으로 옷을 더 만들어내니 원가에서 이득이 난다.
그 뿐인가. 가격에 있어서도 비싸야 잘 팔리는 정신병동의 시장이다. 싸면 안 팔리고 비싸면 잘 팔리는 한국의 유행시장 특수성을 잘 파악하고 그 덕을 단단히 본다. 무슨 브랜드가 유행이더라 하면 서울의 거리는 그 브랜드의 상품이 거리를 채우고, 뭐가 몸에 좋고 어떤 것이 정력에 좋다더라 하면 그 먹거리는 세상에서 끝장이 날듯 팔려나간다.
몇년 전에는 비타민 C가 유행이었다. 일어나 한 개 먹고, 밥 먹고 한 개 먹고, 지하철에서 한 개 먹고 걸어가며 한 개 먹고 심심해서 한 개 먹고 모임에서 한 개 먹고, 자기 전에도 한 개를 먹는다. 비타민 C를 먹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 때문이고 유행 속에서 얻어내는 자기만족 때문인 것이다.
무슨 약인가 몸에 좋고 정력에 좋다고 유행이 되더니 성화같은 요청에 서울 가는 차편에 모두들 그 약병을 들고 갔다.
올해는 노화방지 약이 유행이다. TV나 신문을 이용하여 그럴듯한 선전을 몇 번 뿌려대고 그것이 운수대통하는 날이면 유행이 된다. 서울에서 오는 전화에는 그 성장 호르몬제 좀 보내달라는 부탁이 대화의 삼분의 일이다.
조니워커 주인이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허리를 굽히며 한국에 왔다가 며칠 지나 갈 때는 목에 힘주고 오히려 감사장을 받아들고 한국을 떠났다. 주권(主權) 국민이 주권(酒勸) 국민으로 전락한 탓이다.
먹고 노는 사람들이 전문직 종사자를 비웃는 나라, 얼굴 화장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온몸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비웃는 나라, 겉으로 교포를 비웃고 속으로 이민가고 싶어하는 나라, 빈 속을 유행으로 채우는 나라, 유행병자 병동의 나라.
김윤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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