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길에 올랐다. 5년 전 미국인과 언론의 환대를 받으며 워싱턴을 방문했던 김대중대통령과 달리 그 발걸음이 무척 무거울 것이다. 또한 한번도 미국 땅을 밟아 보지 않았던 노대통령으로서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
노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인 9일 저녁 국회 통일외교 통상위 소속 위원들과의 만찬에서 방미의 목적을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공조, 주한미군 주둔 재확인,한미동맹의 유지와 강화, 경제안정을 위한 신뢰감 조성, 이라크 복구참여,반미감정에 대한 오해 해소등 6가지로 요약했다고 한다.
이중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는 아무래도 북한 핵 문제가 될 것이다. 이와관련 노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합의보다는 북한의 핵 포기를촉구하면서 한미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 미국 땅을 밟아보는 노대통령으로서는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않는 북핵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목표를 낮게 잡고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말이 일리가 있다. 또한 기대치가 높을 경우 이를 충족치 못하고 돌아왔을 때돌아올 역풍을 경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울러 2년 전 김대통령의 방미를반면교사로 삼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미간의 공조를 다지면서 북핵 문제를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그러한 여유를 허락할 것인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는 이 중요한 시점에 그것도 국빈방문이 아닌 실무방문임을 강조하면서 원칙만 합의하고 오겠다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고 부시 대통령이 대답을 요구하면 이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간 미국 측의 불만은 노대통령이 북한의 핵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북한이 이를 강행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없다는데 있었다.
물론 부시대통령도 북핵 해결에 있어 한미공조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미국 언론은 만만하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확실한견해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물을 것이고 이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민망한 일을당할지도 모른다. 한국언론에 불만이 많은 노대통령이지만 아마도 미국 언론은 또 다른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하고도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북핵 문제는 더 더욱 어려워질 거라는데 있다. 사실 가장 다급한 것은한국이다. 미국으로선 한 두 번 더 형식적인 북한과의 회담에 응하긴 하겠지만 협상에 적극적이진 않을 것이다. 미국은 군사행동, 경제 제재, 체제 변화등 다양한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
한미간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협의 없이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는 식의 언론용으로치장할 생각을 해선 안된다. 그러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시간이 촉박하다.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간의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타진해야 하며, 설사 공개는못하더라도 정상간에는 분명한 이해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워싱턴에 있는 미국친구들에게 노대통령의 방미를 보는 심정을 물어보았다.
대부분이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대답한다. 노대통령의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순발력에 기대하면서도 뭔가 제대로 준비가 안된 채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것이다.
반쪽의 우려가 기우이길 빈다.
신기욱 (스탠포드대학 사회학/ 국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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