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집권 때인 1968년 전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날인 제도가 생겼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그가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 해 1월 북한의 무장공비가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한 데다 반정부 목소리가 거세던 터라 묘안을 짜낸 것이다.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색출해 사회 안정을 꾀하자는 게 드러난 명분이었지만, 일제가 20세기 초 만주괴뢰 정부를 맘대로 주무르기 위해 지문날인 제도를 처음 사용한 것을 만주 군관학교 출신 박정희가 정권유지 차원에서 본 딴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외국인 지문날인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출입국관리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당사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이 제도의 후진성을 점진적으로 타파하기 위함이란다.
한국에서는 지문날인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고 해서 논란이 심하며 지난 99년 플래스틱 주민등록증 갱신 이후 50여만명이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자국민에게 지문을 찍으라고 하지 않는 일본이 재일동포에 대해 지문날인을 강제해 한일간 외교마찰로까지 비화하자 92년 한국과 대만계에 대해 지문날인을 강요하지 않았고 99년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지문날인이 꼭 말썽거리만은 아니다. 과거 이집트, 중국 등지에서는 지문날인이 중요한 증거물로 사용됐었다.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연금지급 시 수령자로부터 지문날인을 받았다. 지문은 인위적으로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보존된다는 점에서 증거물로서의 가치를 발한다. 게다가 지문은 유전적인 형질이므로 친자 확인에도 어느 정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문으로 소위 ‘위험인물’을 척척 집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문가들은 열 손가락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지문의 양태를 대략 20만 종으로 본다. 더 세분화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손쉽게 판별하는 척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1900년대 초부터 용의자의 유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재판과정에서 지문감식법을 이용했지만 그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지난 1월 필라델피아 연방법원이 용의자 지문과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에 신빙성이 결여됐다고 판결했다.
내년부터 미국에 들어오는 방문자, 유학생, 연수생, 임시 취업자 등은 출신국가를 막론하고 입국수속 시 지문을 찍어야 한다. 테러범이나 범법자의 입국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이스라엘에서 테러가 잇달아 발생하고 미 본토에 대한 테러 우려가 커지면서 나온 예견된 조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해선 안되겠지만, 지구촌의 선망의 대상이던 ‘열린 사회’가 서서히 닫히고 있는 듯해 답답해진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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