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가장 꺼려하는 말의 하나는 ‘자식에게 손수 모범을 보여라’는 금언이다. 아버지는 누구이고 ‘아버지날’은 무엇인가. 아버지란 ‘내가 정말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나 자책하는 사람’이고 아버지날은 그 자책을 총결산하는 날이다.
많은 아버지들은 불행하게도 ‘자식들아!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해마다 결산을 해봐야 자식에게 손수 모범을 보이면서 제대로 자식을 돌보고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정의 버팀목인데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언제나 바쁘게 살아가기에 아버지는 오늘날 자식 앞에서조차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6월의 ‘아버지날’이 오면 한국같이 “‘어버이날’로 한데 묶지 왜 따로 따로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리고 ‘아버지날’이 오면 5월의 ‘어머니날’로 숨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아내를 업고 그냥 덩달아 묻혀 넘어가고 싶은 생각에서다.
자식들이 가슴에 꽃 훈장을 달아주고 저녁 한끼 대접받는 것도 이날 따라 꽤나 부담스럽다. 눈치 챈 아내는 “자식들 편하게 하자는 대로하지 뭘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옆구리를 찌른다.
미국에서 이렇게 한달 반 차이로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이 독립돼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생긴 유래가 각각 다르고 둘째는 미국의 부부관이 ‘같이 살되 각자 상대의 자긍심을 존중하며 다르게 산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래서 ‘어버이 날’이 아니고 ‘어머니 날’ ‘아버지 날’인 것이다. ‘어머니 날’은 1907년 애나 자비스가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2주기를 맞은 자기 어머니의 추도 예배를 계기로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자는 캠페인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아버지 날’은 1910년에 소노라 다드가 남북전쟁 때 부상을 입고 귀가하여 동부 워싱턴주 농촌에서 홀아비 몸으로 농사를 지어 가며 다섯 자녀를 키운 자기 아버지 윌리엄 스마트를 위해 아버지의 생일 달인 6월 셋째 일요일에 축제를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
미국의 ‘아버지 날’이 6월인 것은 5월 ‘마더스 데이’의 축제 열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함만도 아니고 ‘파더스 데이 세일’로 6월에 한번 더 재미를 보자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이 날 오후 공원 묘지를 가보면 연분홍 카네이션을 단 어머니들이 흰 카네이션을 묘비에 올려놓고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자식에게 받기도 하지만 위로 아버지, 남편 등 망자에 대한 추모도 잊지 않고 있는 실증이다. 이것이 이른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미국의 단면인 것이다.
전에 아버지는 ‘집안의 대들보요 뒷동산의 바위’였으며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큰 이름이요 삶의 그늘’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아버지는 ‘허물어진 성터’나 ‘공원의 일그러진 벤치’ 같은 이름이다. 많은 아버지들은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지 못했다고 자괴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괴감은 자괴감마저 없이 삶에 짓눌려 사는 것에 비하면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에 있어서 자괴는 첫째가는 덕목이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에 구원의 손길이 닫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나’ 자책하는 ‘아버지날’이 아니라 ‘자식들아! 나처럼 살라’고 말 할 수 있는 ‘아버지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장익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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