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을 바라보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10대에도 용기가 없어 못 했던 유명인사의 사인을 받아내는 유치한 짓을 한 적이 있다. 2 년 전 서울에서 문화제전이 열렸을 때인데 어느 행사에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고 존경하는 한 언론인이 연사로 초청되었었다. 그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 따라 나가서 그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노트를 들이밀었었다. 아줌마의 뻔뻔함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그 언론인을 존경하는 마음이 더 나를 부추겼을 것이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나는 많은 언론인들과 방송인들을 존경한다. 그들의 힘있는 글과 말을 좋아하고, 그들의 확고한 사명감을 존경하고, 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에 감사한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온 시냇물을 흐린다더니 최근 몇 년 동안 곳곳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받던 언론인들이 기사도용 등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 자신들이 속한 신문사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독자들을 실망시키고 언론인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수치스런 행동을 상품화해 책으로 속속 펴내고 있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한 술 더 뜨는 언론인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번의 ‘The Age’라는 신문의 베테랑 사회부 기자인 존 실버스터는 어느 한 흉악범을 1970 년대부터 줄곧 취재하면서 그에게 많은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의 범죄 동기라든가 배후이야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년이 넘게 감옥을 드나드는 그를 취재하는 동안 그와의 인터뷰와 편지를 통해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리를 건질 수 있었다. 거의 까막눈인 그 흉악범을 부추겨 기자 사비로 책을 내주었는데 첫 번 째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고 한다. 그 첫 성공에 힘입어 이제 그 흉악범은 모두 11권의 책의 저자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 흉악범은 무대에도 진출해서 자신의 범죄를 총천연색 언어로 엮어 사람들을 웃기고 자신의 인기에 어깨를 우쭐대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다고 한다. ‘원수의 눈알을 뽑아 맥주 잔에 넣어 맥주를 마시며 통째로 삼켜버렸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도 그지만 그걸 코미디라고 들으며 재미있다고 웃는 청중은 또 어떤가. 그리고 이제 그 흉악범은 아동문학에까지 손을 뻗쳐 어린이를 위한 책도 썼다는 것이다.
흉악범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지 말라는 법은 물론 없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범행에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당당하게 여긴다는 것과 책의 내용이 자신의 범죄 행위를 적나라하게, 그것도 재미있게 쓴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책들을 쓰는 동안에도 수 차례 사기, 살인 등의 중범 죄로 여러 번 감옥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도덕을 지키는 살인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인즉, 자신이 죽이는 사람들은 어린이를 유린하는 자, 혹은 아파트 렌트비를 안 내는 자들로서 죽어 마땅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사회 정화에 한 몫 해야 할 사회부 기자가 오히려 자신의 범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 흉악범을 상품화시켜 사회를 오염시키는데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영옥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