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숙 칼럼
▶ 10년만에 방문한 한국 <4>
10년만에 갔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나는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굉장한 환대를 받았다. 때로는 마치 내가 여왕이나 된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큰오빠 댁에서 우선 묵고 있는 나를 둘째 언니가 운전기사를 보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나, 어디서 잘까?"하고 물으니, 언니는 “응, 안방 써라, 다 치워놨다."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귀한 손님이 와도 매스터 베드룸을 내 주는 일은 잘 없다. “잉? 내가 어떻게 안방을... 저기 문간방이면 되겠는데."하고 사양을 하는 데도, “아니다, 아니다!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하면서 언니는 밀어붙였고 형부께서도 적극 동조하셨다.
오랜만에 나온 서울에서 책 교정 작업까지 하려면 우선 몸이 편안해야 한다면서 미안해하는 내 입장은 도무지 들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론 수퍼마켓에 데려가서 먹고 싶은 것은 다 말하라면서 이 것 저 것을 가리키며 먹고 싶지 않으냐고 나를 다그쳐댔다. 뚱뚱보를 만들어서 보낼 작정을 톡톡히 한 것 같았다.
그 다음 날, 내가 자기와 같은 크기의 옷을 입는 것을 알아낸 언니는 신이 나서 옷장을 다 뒤져서 한 더미의 옷을 꺼냈다. 그리고는 하나씩 다 입혀서는, 거울 앞에 서 봐라, (이 도령이 춘향에게 하듯) 돌아서라 뒷모양을 보자 등등 내게 몇 시간의 패션 쇼를 하게 만들었다. 결국 또, “언니가 주면 받아야지, 그러면 쓰나!"하는 통에 거절을 못하고 그 옷들을 물려받아서 돌아올 때 가방이 임신 8개월 짜리가 되어서 낑낑대며 왔다.
부산에 있는 친구를 보러 갔을 때도 나는 당연히 친구 집(빈방이 있었다)에서 자겠지 했는데, 이 친구가 해운대에서도 제일 고급인 호텔 꼭대기 층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을 잡아놨다는 것이다. 좀 기분이 이상했으나, 나중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아, 잘 해주느라고 그랬지, 뭐."라고 하기에 나도 그런 가보다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미국에 오래 살아서인지 몰라도 내게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호텔을 잡고, 또 “여기 사우나가 참 좋다."면서 호텔에 가자마자 사우나탕에 데려가서 나는 좀 어안이 벙벙했다.
여자들끼리라고 하지만 벌거벗고 한꺼번에 들어가는 ‘공중목욕탕’은 20년 이상 가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쭈볏거리고 불편해하다가 먼저 나와버렸다. 호텔 방은 아주 좋았고 아침 식사도 그 층만은 따로 식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내 식사에 동무해 주기 위해서 나온 친구는 “너 여기 호텔에 재워주자 했더니 우리 남편이 아무 주저 없이 그래라 했다. 참 너그러운 사람이지?"라는 얘기도 했다. 나는 이런 호텔 꼭대기층 오션 뷰(ocean view) 방은 참 비싸겠지, 이런 귀빈 대접을 하니 나는 어떻게 갚을까 하고 내심 부담이 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호의는 호의대로 받는 게 좋겠지, 이게 다 잊고 살던 한국의 푸근한 인정이잖아 하고 자신에게 일러두었다.
여기선 두 가지만 얘기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VIP 대접을 해주어서, “역시 한국은 인심 좋고 살 맛 나는 곳"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해줄까 하고 안달이 난 듯한 사람들! 때로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마저 들도록 그들은 정말 있는 모두를 풀어서 아낌없이 잘 해주었다.
단 한 가지, 내가 더 바라는 것은 이런 인정이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욱 더 우선적으로, 베풀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어느 낯설고 남루한 사람이 다가왔을 때도 그를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로 감싸안아 다정한 말과 웃음, 그리고 따뜻한 잠자리와 정성껏 차린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로 한국 사회가 가득 차 있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온 어느 중학생이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교에서 놀라운 일을 겪었다고 얘기했다. 어떤 장애를 가진 학생이 불편한 손으로 겨우 겨우 그린 그림을 놓고 선생님과 학우들이 모두 많은 칭찬을 했고, 그 학생은 좋아서 몸을 뒤틀면서 마냥 웃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같으면 “병신 꼴 값 하네,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냐?"하면서 ‘왕따’를 당했을 것인데,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나는 이 학생이 그렇게 놀랐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놀랐다.
그러나 곧 우리 집안에서 겪은 뼈아픈 경험을 떠올리면서 “사실 뭐 놀라운 얘기도 아니지..."하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안에서 딸을 하나 입양을 했었는데, 어쩌다 그 사실이 학교(초등)에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아이는 ‘왕따’를 당하고 계속되는 놀림과 학대로 자폐증 증상을 보이면서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어서 지방으로 학교를 옮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하면서 온 가족이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했던 일이다.
정말 순수한 선의에서 입양을 했던 이 가족은 비참한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 선생님들과 학교 당국은 수수방관만 했다니 더 기가 막히다. 다만 우리보다 불운했을 뿐 아무 잘못도 없는 장애 학생과 입양 학생을 ‘우리’의 울타리 바깥으로 내쫓지 않고, 내 몸과 같은 ‘형제 하나’로 받아들여서 인정을 베풀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될 때까지는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요즘 부르짖는 ‘2만 달러 국민 소득’보다는 이런 ‘함께 사는’ 선진 의식과 문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집단 이기주의’라는 말이 거의 매일 신문 방송을 타고 있다. 또 며칠 전에는 노숙자 한 사람이 자기를 멸시한다며 중년 부인을 지하철 역에서 떠밀어 죽게 한 일이 보도되었다. 냉담한 사회에 원한을 품은 사람의 돌발적인 ‘복수’ 행위이다. 대구 지하철 화재의 방화범 또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슈가 말하듯 이 세상에는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서" 살아가야만 할 처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
친절’은커녕 냉대와 경멸만 받는다면 이들은 반사회적 심리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된다. 정말 우리가 이기적이라면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그 친절의 열매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내게 또는 내 후손에게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랑인 후한 인심이 가깝고 먼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애팔래치안대 정보기술 시스템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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