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에 오는 명칭이 한 가지로 똑 떨어지는 이들은 분명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다. ‘차인태’ 하면 자동적으로 뒤따르는 명칭은 아나운서. 70년대 그가 진행하는 장학퀴즈를 보며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들은 시집 장가가서 아침 출근 준비를 할 때에도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으로 새로운 소식과 정보를 접했다.
어디 그뿐일까. 권위와 친근감을 동시에 갖춘 그의 목소리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대통령 이·취임식, 각종 국경일 기념식, 월드컵 축구 경기 등 나라 안팎의 큰 행사 중계 방송에도 딱 맞아 떨어졌다.
아무리 오랜 세월 해온 일이라 하더라도 손을 털고 일어날 때는 어느 정도 미련이 남는 법이지만 차인태 씨의 경우는 예외였다. 1966년부터 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말 실컷, 원 없이 해온 것이 방송이라 눈곱만큼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니 부럽다. 미련 없이 살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경기대학교 멀티미디어 학부가 신설되면서 교수로 초빙된 그는 방송하던 시절처럼 열정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금년 5월 참여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그가 명함의 이름 석자 앞에 갖게 된 새 직함은 평안북도지사.
실제 존재하는 지역의 책임자인 그 직함이 왠지 사이버 공간 안 가상 세계보다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북을 바라보는 우리들 시각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꼭 1992년 있었던 유엔의 남북한 동시 승인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북한을 국제적 미아로 내모는 것은 시류에 어긋나는 것 같다.
해외 동포까지 포함해 940만의 실향민들은 남들보다 가슴에 커다란 상처 하나를 더 안고 살아간다. 가고 싶을 때 고향에 갈 수 있는 사람과 실향민들의 북을 보는 자세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폭을 좁혀 나가고 통일로의 길을 앞당기는 민족과업에 그는 현재 많이 몰입해 있다.
구기동의 지사실에 출근해 이북 5도민 신문을 살펴보고 여러 모임들을 주재하느라 주말도 저당 잡힌 지 오래지만 이 정도 희생이야 오히려 즐거움이다.
5세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압록강변을 건너온 그가 뭐 그리 대단한 실향민의 아픔을 느낄까. 하지만 민족 통일에 대한 뜨거운 가슴과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사고는 그의 북에 관한 지식과 이해를 정확하고 냉철하게 만든다.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유난히 정확한 발음, 똑 부러지는 단어 선정, 해박한 상식, 사람을 휘어잡는 말솜씨에 매료됐다. 하기야 달리 아나운서가 됐을까.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시간 있을 때마다 본래 전공도 게을리 하지 않아 한국 최정상의 남성 성악가들로 구성된 솔리스트 앙상블에 참여해왔고 지난 주말에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콘서트’를 위해 LA를 찾기도 했다. 바리톤으로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많은 이들이 노래보다는 사회가 더욱 감동을 줄 것이라 해서 이번 행사에도 진행을 맡았다. 무엇이 됐든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의 위치에 선 이들은 아름답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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