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의사가 그의 사망원인을 써서 정부기관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이 불분명할 때는 사체부검을 실시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의 원인을 가리거나 직접 사망원인과 간접 사망원인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한 사람이 배에 총을 맞고 머리는 막대기로 맞고 가슴을 칼에 찔렸다면 막대기 때문에 일으킨 뇌출혈이 사망원인인지, 배로 들어간 총알이 심장을 관통했는지 또는 칼이 폐를 찔러 호흡마비로 숨진 것인지 자세한 직접 사망원인을 밝힘으로써, 여러 가해자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묻는데 필요한 증거를 찾게 된다.
또는 미리 약물을 먹이고 죽인 후에 익사한 것처럼 시체를 물에 던졌을 때 그 사람의 폐에는 물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래서 이런 증거로 익사인지 약물로 인한 타살인지를 감별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살이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이 왜 자살하게 되었는가 하는 심리적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그의 행적과 주위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 자살원인을 알아내는 것을 심리부검이라고 한다. 너무 가난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든지 신체적 불구인데 치료비가 없는 절망적 상태에서 자살하는 경우, 또는 그 외의 여러 이유로 주위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고독한 상태에서 자살을 하는 경우들을 보아오면서 이들에게 한 사람이라도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자살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요즘 심해지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돈 및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서 자살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며 그 형태는 더욱 복합성을 띠는 것 같다. 며칠 전 있었던 부자 자살의 기사를 보면, 고등학교 2학년생이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가 없어서 죽음을 선택했고, 이후에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후회하는 자책감으로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 경우를 보면 학생은 아버지의 지나친 희생과 이를 통한 기대를 이루지 못한 데 대해 부담감(내지는 죄책감)을 느끼고 아들로서의 역할과 체면을 지키지 못한 것을 죽음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아들을 죽게 한 아버지는 자신의 과오에 죄책감을 느끼고(또는 자기의 기대가 꺾인 데 대한 절망감) 따라서 자살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정몽헌 회장의 충격적인 투신자살 또한 여러 사람의 너무 큰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어쩔 수 없는 인간적 한계에 부딪혀서 불명예를 느끼고 스스로 자살의 길을 택하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이 든다.
동양문화권에서는 이처럼 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드는 체면, 명예의 문제가 자살의 큰 이유가 되어 왔다. 가문의 명예나 양반의 법도를 지키지 못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치관이 아직도 우리 문화 속에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서양 문화권에서는 자살의 심리적인 원인은 죄의식에서 기인하며 이 죄의식은 무의식적인 분노가 자기 내면화되면서 자신을 죽이게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부모, 친척 등)들이 자기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을 때 그들에 대해 자연스러운 분노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분노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무의식에 쌓이게 되고 이 분노가 내면화되면서 자기 자신을 향해 폭발할 때 자살하게 되다고 설명한다.
이런 모든 복잡한 자살현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너무 많이 가졌던지 너무 못 가졌던지 할 때가 가장 위험한 것 같다. 돈, 애정, 권력, 명예, 건강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큰 기대는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된다. 우리는 각자 무엇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가, 너무 못 가지고 있는가, 또는 나는 누구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받아들임으로써 현대의 빠른 흐름 속에서 자신과 주위사람을 보호하는 데 시선을 돌려야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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