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 막내아이의 입술이 너무 말랐길래 입술약을 발라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헌데 그날 밤부터 아이가 고열에 끓더니 아침에 깨서 보니 입술이 점점 붉어지며 붓고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며 남편은 몇 년 전 조카아이가 앓았던 가와사끼씨 병이 아닌가 싶다며 준비를 하자 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소아과 선생님을 뵈오니 아닌게 아니라 증세가 약하긴 해도 가와사끼씨 병이기 쉽다는 진단을 하셨다. 병에 대해 잘 모르는 나를 위해 차분히 설명을 하셨는데.
원인 모를 고열이 5일 이상 계속되는 가운데 온몸의 혈관이 붓고 눈과 입술의 혈관이 터지고 심해지면 손발마저 붓다가 온몸에는 열꽃이 피고 그대로 방치하면 며칠 안에 심장의 동맥이 터지는 무서운 병이라고 하셨다.
심장의 동맥이 터져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하고 멍하니 묻는 나에게 선생님은 그럼 끝이지요. 이러셨다. 세상에 머리가 멍해지는데 얼른 설명을 덧붙이셨다.
가와사끼 박사가 병을 찾아낸 이후 요즘은 약이 좋아져서 지난 20년 동안 LA에서는 아무도 그 병으로 잘못된 아이가 없고 또 마침 동양인이 많이 걸리는 그 병의 세계적 권위자가 LA Childrens Hospital에 계시니 아이가 고생스럽긴 하겠지만 큰 걱정은 말라고 하셨다.
아이를 데리고 큰 병원(이 말의 두려운 어감이라니!)에 도착하여 입원수속을 하는데 어미의 마음엔 앞으로 아이가 싸울 병을 향한 비장한 각오가 일었다.
진찰실을 찾은 의사 선생님들이 한참을 진찰을 한 후, 아이의 증세는 경미해도 가와사끼병인 듯 싶다며 내일 아침이면 저명하신 메이슨 박사님이 직접 오실 것이니 걱정을 말라며 안심을 시켰다.
수없이 많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같은 질문을 묻고 또 묻는 가운데 한 분은 조용히 아이를 살핀 후 아이 소아과 선생님의 성함을 듣더니 그 분이 경험이 많으셔서 이렇게 초기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셨다며 존경을 표하셨다.
한밤에야 병실을 배정 받았는데 진찰실에서 시작되던 아이의 열꽃이 아이비를 꽂고 시원한 병실에 들어오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입술은 점점 더 말라서 울기만 하면 터져 선홍색 피가 주르륵 흐르는데 증세로만 판단되는 중병의 다른 증세들이 너무 약하다며 피검사, 가슴 엑스레이, 소변검사에 콧물검사마저 하며 다른 원인에서 오는 고열이 아닌지 검사를 하였다.
병이 더 심해지든지 아니면 모든 검사 결과가 나와야만 약을 투여할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어서 날이 밝아 메이슨 박사님이 오셔서 속시원한 처방을 내려 주시기만을 기다렸다.
아침 진찰시간에 그 유명하신 세계적 권위자가 한 무리의 제자들을 데리고 아이를 보러 오셨을 때 우리는 속으로 놀랐다.
그 전날 진찰실에 혼자 들어와서 겸손한 자세로 아이를 들여다보고 아이의 소아과 선생님을 잔뜩 칭찬하고 가셨던 바로 그 선생님이 벌써 퇴원하셨을 것이라던 메이슨 박사님이셨다. 자기 환자가 들어왔다는 보고를 들으신 박사님은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혼자 슬쩍 내려와서 아이를 보시고야 퇴근을 하셨던 것이다.
열두시간이 걸리는 투약이 시작되자 부작용 검사를 위해 15분마다 아이의 경과를 살폈다. 지친 아이의 환심을 사려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오시던 인턴 선생님들, 우는 아이를 달래가며 보살피던 간호사님들은 막내아이가 보기 드물게 약하게 치르며 병을 이겨낸다며 자기 일마냥 좋아했다.
교회에서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시던 분들의 소식이 전해져 왔다.
일년에 몇번 안 되는 연휴는 병원에서 그렇게 날아갔지만 아이를 데리고 3일만에 퇴원하는 내 마음은 더없이 감사하기만 했다.
앞으로 그 큰 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아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 주신 모든 분들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정말 잊지 못할 주말이었다.
고경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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