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말도 잘했지만 편지도 잘 썼다. 3년전 부인 낸시 여사가 남편으로부터 받은 편지들을 묶어 책으로 펴 낸데 이어 이번에 두 번째 서한집이 나왔다.
새로 출간된 서한집 ‘레이건-편지 속의 삶’은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커론 스키너교수가 냉전종식에 관한 연구를 하느라 레이건 자료들을 조사하던 중 끝도 없이 나오는 편지뭉치의 엄청난 양에 놀라 기획된 것. 아들 딸, 친지, 국가 지도자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쓴 편지 5,000여통을 발굴해 1,000통 정도로 간추렸다고 하니 대단한 양이다. 집필진이 발굴한 편지가 전부는 아닐 것으로 추정되고 보면 레이건은 ‘밥 먹듯’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실제로 레이건은 틈만 나면 편지를 썼다. 낸시 여사가 펴낸 ‘사랑해요, 로니’(I Lovd You, Ronnie)를 보면 레이건은 대통령 집무실에서도, 공군기 1호 안에서도, 때로는 한 지붕 밑에 있으면서도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모든 편지가 자상하고 애정이 넘치지만 결혼 기념일 편지는 특히 낭만적이어서 낸시 여사는 이 날이 되면 편지에 대한 기대로 설레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편지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레이건의 서한집 내용이 보도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언제 편지를 받아보았던가?”혹은 “언제 편지를 써보았던가?”
전화 보급 후 줄어들기 시작한 편지는 이제 e-메일, 휴대전화가 주요 통신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구경조차 힘들게 되었다. 대개 편지를 가장 많이 쓰는 것은 연애할 때인데 요즘 젊은 세대는 채팅으로 사랑 고백을 대신 해버리니 편지 쓸 일이 없다. 아울러 이민 초기 한국의 부모 친지들에게 소식 전하느라 편지를 썼지만 국제 전화요금이 싸지면서 안부전화로 대신하는 것이 일반화했다.
전화와 편지의 근본적 차이는 전자는 말이고 후자는 글이라는 점. 말보다는 글로 쓸 때 더 깊고 섬세한 생각들을 나눌 수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차이는 전화는 끊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편지는 길이 남아서 수십년 지난 다음에도 당시의 애정, 사랑, 혹은 추억을 되새겨 준다는 것.
LA의 회사원 P씨는 몇 달 전 감동적인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쓴 사람은 바로 30여년전의 자신.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담임선생님에게 보낸 편지를 은사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그에게 되돌려 준 것이었다.
“나는 편지 보낸 기억도 안 나는데 거기 내 이름이 써있더군요. 그 편지가 수십년 떨어져 살던 사제의 정을 다시 이어 주었습니다”
전화는 아무리 많이 해도 전화 고지서밖에는 남는 게 없다. 이 가을에는 편지로 추억의 증거를 남기자.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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