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구월 중순이면 세계에서 유일한 비행기 속도 경기 겸 각종 에어쇼가 네바다주 리노에서 거행된다. 위스콘신주 오시커시의 에어쇼와 더불어 항공분야에서는 세계적인 행사로 꼽힌다.
비행기로 리노에 가기로 결정했으나 이미 그 곳 스테드 비행장이 에어쇼 참가 비행기들로 더 이상 계류할 곳이 없어 착륙을 허락하지 않고 또 네바다주를 가로지르는 사막 길로 드라이브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자동차로 떠났다.
I-80도로를 타고 계속 서쪽으로 달린다. 때마침 추석 다음날 밤이어서 사막의 달을 쳐다보며 낭만을 느끼려고 오후 늦게 떠났으나 밤이 되었는데도 달은 뜨지 않고 그 자리에 빨간 화성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쩌면 등불 하나 보이지 않고 이렇게도 어두울까 했더니 저 멀리서 파랗고 하얀 불빛이 번갈아 어렴풋이 보이지 않는가. 항공규약상 민간 비행장을 알리는 신호임에 틀림없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비행장이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프랑스 조종사 생텍쥐베리가 사하라 사막에서 불시착했던 이야기가 새삼 실감 있게 느껴진다.
밤 10시쯤 됐을까 왼쪽 차창에서 커다란 달이 산을 박차고 떠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검푸른 사막의 하늘을 비좁은 듯이 채우고 곧 떨어질 것 같이 보였다.
아마도 이래서 생텍쥐베리가 그의 저서를 바람과 모래와 별 이라고 이름지은 것이 아닐까.
이튿날 새벽부터 스테드 비행장의 하늘은 비행기 엔진 소리들로 시끄러웠다. 아침 7시30분 정각에 요란한 엔진소리가 동시에 들리더니 복엽기 수십대가 동시 이륙하여 선회비행하고 있다.
비행기 속도 경기는 자동차 경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변수들이 있다. 그 예로 고도를 50피트에서 1000피트까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높은 고도에서 낮은 고도로 내리면서 달리면 속도가 더 빨라지므로 앞 비행기를 가로지를 때는 필히 하강비행을 해야 한다. 또 경기가 끝나면 그때까지의 속도를 착륙속도로 낮추기 위해 엔진 출력을 낮추면서 거의 45도 각도로 상승 비행을 해야 한다. 그때는 지상 5,000피트까지 오를 수도 있으므로 조종사들에게는 경기중의 긴장을 풀고 하늘 높이 오르는 황홀한 순간이다.
올해의 쇼에서는 해마다 참가하는 러시아의 미그기가 한대도 없었고 그 대신 스웨덴 전투기 SAAB가 음속의 2.5배를 자랑하며 각종 묘기를 보였다. 미공군 및 해군의 F-16 및 F-18기의 묘기 역시 장관이었다.
해마다 있는 미공군의 헤리티지 비행은 2차대전 때 활약하던 P-51기와 신형 제트 전투기가 같이 비행하면서 묘기를 보이는 쇼이다.
돌아오는 길 가을 하늘 석양이 짙어 가는 사막 길에서 젊은 시절 해군 함제기 조종사였으나 지금은 심장이 나빠 비행할 수 없다는 크리스 맥밀란의 얼굴이 내 마음을 서글프게 만든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아- 하늘아, 푸른 하늘아!
정석화/공학박사·조종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