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보험금이 인상되고 세금이 올라가는 등 자꾸만 뉴욕에 사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다. 그 중 주 정부의 교육 예산 지원이 적은데다 시 정부가 예산 적자를 줄이고자 직원 감원은 물론 도서실 개관 시간을 대폭 줄인 일은 수많은 학생과 학부형들을 곤란에 처하게 하고있다.
쉬는 날이면 한 달에 두어 번 집 근처의 자그마한 동네 도서실에 가서 책이나 이것저것 비디오 테이프, CD를 빌려다 보고 듣는 즐거움이 만만찮았다.
게리 쿠퍼가 나오는 ‘하이 눈’이나 잉글리드 버그만의 ‘카사블랑카’ 등 옛날 흑백 영화를 빌려보며 ‘그래 옛날에는 이런 낭만과 멋이 있었지’ 감탄하기도 하고 이미 오래전에 유행되었던 한국 유명영화 비디오 테이프는 ‘비디오 가게에서 빌리자면 2달러50센트인데 돈 벌었네하는 재미가 썩 괜찮았다.
굳이 책을 빌리지 않더라도 햇볕이 화사하게 들어오는 도서실 유리창가에 앉아 미국 책이나 인도책, 일본책, 중국책 등의 표지와 사진만 구경하는 것도, 그 자리에 앉아 책장을 건성으로 넘기며 꼬박 꼬박 조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몇 달전부터 평소 가던 동네 공공도서실이 토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빌린 책을 잔뜩 안고서 닫힌 문 앞에서 난감해하다가 ‘아하, 뉴욕시 재정관계로?하고 깨닫게 됐다. 결국 플러싱 메인 스트릿의 도서실까지 가야하는 불편함은 짜증으로 몰려왔다. 동네라면 아이들끼리 가도 안전하지만 그 혼잡한 메인스트릿에 있는 도서실에 가자면 멀기도 하고 어른이 동행해야만 한다.
아이들은 학교 리포트와 프로젝트를 위해 책과 자료 수집차 수시로 도서실을 들락거려야 하니 그 일이 보통 아니다. 도서실 가야해., 며칠 전에 갔다왔는데, 또 간다고?하고 놀라면 프로젝트 해야해. 그 말에는 꼼짝 못한다.그나마 주말에 문을 열던 메인 스트릿 도서실이 일요일에 문을 닫고 토요일만 문을 여니 풀타임으로 일하는 나 같은 학부형은 평일은 물론 못가고 토요일에만 갈 수 있다. 평소에도 도서실 주변 도로는 얼마나 복잡한 지 주차는 커녕 걸어다녀도 인파끼리 어깨를 부딪칠 정도다.
공영주차장까지는 거리도 멀뿐더러 그 시간에 주차 자리도 없다. 버스를 타고 가자니 주말에는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다 버스 정류장까지 멀기도 하고 책 무게가 상당하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책을 다 빌릴 동안 그 거리를 두어 바퀴 돌거나 멀리 떨어진 도로에 더블 파킹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핸드폰으로 끝났어? 그 앞에 나와 서 있어., 왜 빨리 안나와 소리 질러가며 만나야 하는 등 도서실 한 번 가기가 아비규환이다.
우리,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한가한 토요일 오전, 동네의 자그마한 도서실에 가서 여유 있게 이런 저런 책을 둘러본 다음 근처 가게에서 마늘빵,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을 앗아간 자가 누구인가. 공공도서관 예산 삭감으로 인한 이 불편을 언제까지 감수해야 하나.
그동안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9.11 이후 손실된 뉴욕시 재정 확보를 위해 부동산세 인상, 각종 티켓으로 걷어들인 세금이 2003회계연도에 흑자를 기록했다는데 이제 제발, 교육 도서실 예산만은 원점으로 돌려주었으면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데 도서실 개장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미래에 대한 투자가 삭감되는 것이다. 수백만 어린이들이 인생의 좌표를 바꿀 책 한 권을 덜 읽음으로써 장차 미국이 얼마나 손해 볼 지를 내다봐야 한다. 득(得)보다 실(失)이 큰 것이다.
앞으로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등 공공기관 노는 날은 많아지고 도서실 문은 그때마다 닫는데 연휴일수록 책을 읽거나 비디오 보는 시간이 많은데 그 넘치는 시간은 어쩌라고? 2004년 시장선거에 나올 새로운 뉴욕시장은, ‘도서실은 연중무휴로 문을 연다’, ‘어떤 불경기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는 선거공약 내세우면 나, 무조건 찍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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