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은 후 7년이 지난 1969년 우리는 두번째로 히말라야를 찾았고 이듬해 1970년 해발 7,351m의 츄렌히말 등반길에 올랐다.
이때 두 아우(고 김호섭, 김기섭)도 참가했으며 유례없이 좋은 날씨 덕분에 김호섭 부대장은 쉘퍼 1명을 데리고 어렵지 않게 정상 등정에 올랐다.
이로써 세계 산악사에 히말라야 고봉 초등정 국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최후의 목표인 8,000m 거봉에 도전코자 다음해인 1971년 봄 등반 목표를 해발 8,152m의 마나스루로 정했다.
그러나 8,000m는 등반대 규모도 거의 두배가 되며 고도의 등반기술을 요구, 세심한 준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해 가을 김호섭 등반대장과 1명의 대원을 정찰등반대로 파견, 사전 답사를 마쳤다. 1971년 우리는 드디어 대망의 마나스루 등반길에 올랐다.
이미 4번의 히말라야 경험과 6,000까지의 루트 사전답사를 한 상황이라 날씨만 좋고 예기치 않은 사고만 없으면 자신 있었다.그러나 도쿄에서 일본 등반대 8팀과 합류, 파키스탄 항공편으로 보낸 우리 짐이 예정보다
20일이나 늦게 도착, 위기를 맞았다.
짐이 동파키스탄에 도착한 날 공교롭게도 독립운동이 발생, 전국이 내란사태에 휩싸였기 때문이다(이때 방글라데시라는 새로운 독립국 탄생).
몬순이 시작하기 전 빨리 등반을 마쳐야 하는데 짐 때문에 꼭 20일이 지체돼 치명타를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에서 항공편으로 부친 짐도 행방불명된 것이다. 해발 8,000m 거봉에 오르는 등반대는 약간의 차질도 없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겨,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이같은 어려움에도 서둘러 등반을 강행, 카투만두를 떠난 지 2주일만에 해발 4,300m 지점에 제1 캠프, 6,000m 지점에 제2캠프를 설치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사전답사 한 루트라 무리가 없었으나 날씨가 너무 나빠 고전했다.
난관을 무릅쓰고 6,600m 지점에 제3캠프를 설치했으나 며칠씩 계속되는 폭설로 제2 캠프로 철수해야 했다. 폭설로 장비와 식량의 손실도 컸다. 폭설에 묻힌 루트를 간신히 따라, 전진하는 와중에도 눈이 쏟아져 루트가 묻혀버린 바람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섭고 강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거대한 눈 기둥이 천막을 덮쳐 자고 있던 대원들이 기적적으로 구조된 적도 있었고 무너지는 산 같은 빙벽에 깔려 중상을 당하고 간신히 살아난 적도 있었다. 고난과 역경, 전진과 후퇴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해발 7,650m 지점에 마지막 단계인 제5 캠프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김기섭 대원이 쉘퍼와 함께 자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출발하는데 이때부터 산소마스크를 쓰고 오전 9시께 충분히 정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만이라도 날씨가 좋으면 성공은 문제없었다.
정상에 오를 2명의 짐 운반 및 지원을 위해 김호섭 등반대장과 3명의 쉘퍼가 뒤따라 올라왔다. 이들은 다시 제4 캠프로 내려가 그곳에서 자고 다음날 비상구조 장비만 갖고 다시 올라가 정상을 등정하고 내려오는 대원을 지원하기로 돼 있었다.
7,650m의 고지는 산소가 평지의 반밖에 되지 않아 잘 때는 산소 마스크를 써야 하고 급한 경사로 천막 하나 칠 수 없기에 얼음과 눈을 파헤쳐 천막을 설치해야 하는 위험지대라 정상에 오를 두 명만 이곳에서 자고 지원대는 제 4 캠프로 내려가 자게 된 것이다.
대원들이 제 5 캠프에 도달하기 전부터 꿈틀되던 날씨가 점점 사나워지더니 막상 캠프에 도착 짐을 풀자 무서운 폭풍설로 돌변했다, 대원들이 엎드려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정상에 오르기 위해 천막 옆에 놓아둔 짐덩어리가 바람에 날렸다.
애탄 마음에 이를 잡으려고 김기섭 대원이 벌떡 일어났을 때 총알같이 날아온 무서운 돌풍이 김기섭 대원을 감싸고 말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김호섭 대장의 눈에 비친 것은 힘없이 비틀거리며 크레파스로 사라져 가는 아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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