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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얼마 전까지 뉴욕 금융가의 경제전문가들이 주장한 공식은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이고, 미국이 회복되어야 세계 경제가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30%, 군사비의 50%를 차지하고 있고, 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경제가 파이를 키워야 다른 나라에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95~2002년까지 전세계 GDP 증가분의 96%가 미국에서 창출됐고, 2000년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글로벌 공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결론은 세계 경제 회복 여부가 미국 경제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올 하반기들어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동시에 세계 경제에도 회복의 기운이 완연하다. 그런데 작금의 세계 경제 회복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 이외의 나라가 미국 회복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성장 모멘텀을 되찾으면서 같은 시기에 회복 기조를 타고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10여년간 정부 차원의 금융구조조정과 기업 차원의 자구노력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수요가 살아나고, 중국은 전세계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미국의 경기 부진과는 상관없이 초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유럽도 올 연말에 바닥을 치고, 내년에 회복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는데, 그 원동력은 미국이 아니라 유로 통화권 자체의 수요 확대 덕분이라고 한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중국이다. 중국의 산업생산은 지난 10월에 무려 17.2% 증가했다. 중국엔 전세계 공장의 40%가 집중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따라서 중국의 경기 과열이 세계적인 파장을 주고 있다. 성급하게 진단하자면 중국의 초호황이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에 산업 기초소재인 철의 수요가 급증하는 바람에 전세계 철광석 가격
이 급등하고, 브라질의 철광산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중국으로 가는 물동량이 급증하는 바람에 전세계 해운 운임이 최근 두달 사이에 수직상승했다. 미국이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는데 비해 원자재와 해운 수입 비중이 큰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은 중국 경기 호황에 따른 여파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최근 금리를 올렸다.
두 나라는 영어권의 국가로 미국과 더 많은 경제관계를 맺고 있지만, 경기 호황의 동력을 중국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지난 3/4분기에 대미 수출이 감소했지만, 중국 수출이 급증하는 바람에 무역 흑자폭이 늘어나는 반사이익을 챙겼다. 중국인들이 먹고 살만하면서 식량 수입이 늘어 미국산 곡물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쯤하면 미국경제의 회복이 세계 경제의 유일한 원동력이라는 가설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경기 슬럼프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웨스트버지니아와 오하이오 등 철강산업 중심지의 표를 얻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수입철강재에 대해 덤핑 관세를 물렸다가 며칠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은 농업 부문에 자유 무역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국 농업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주는 이중성을 보였다. 아울러 유럽과 아시아 통화에 대해 달러를 상대적으로 절하함으로써 무역상대국의 부를 빼앗는다는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세계 경기불황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한다. 1929년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전했고, 1990년대 일본과 독일의 장기불황은 미국 독주의 시대를 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다가온 세계 동시불황이 끝자락을 스치고 있는 지금, 국제경제 질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물론 국제 경제에 미국의 주도권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커지고, 유럽 블록이 강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이 약해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국제경제 질서의 재편 과정이 국제 정치, 외교에도 새로운 갈등으로 번질 소지를 안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은 앞으로 국제환율 시스템과 통상 질서에 미국이 어떤 압력을 가할지 주목하면서 대처할 필요가 있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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