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저 세상 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大天界)만큼 큰데 은혜를 갚은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뿐이네.” 지난 12일 밤 10시30분(한국시간) 법납 56세, 세납 80세로 입적한 청화(淸華) 스님의 임종게(臨終偈)다.
1923년 전남 무안군에서 태어난 청화 스님은 금타(金陀) 스님을 스승으로 한국 불교에 통불교(通佛敎) 사상을 널리 편 스님이다. 스님은 통불교 뿐만 아니라 40여 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인 ‘일중식’, 그리고 46년 동안의 산중선방에서의 수행과 묵언(默言) 및 염불선을 통한 선수행으
로 널리 알려진 스님이다. 스님은 1992년 캘리포니아에 금강선원을 개원해 미국의 불교포교에 뜻을 두어 미국과도 연을 맺고 있다.
청화 스님이 설파한 통불교는 원통불교(圓通佛敎)라고도 한다. 스님은 어느 대담에서 “불교가 모든 종파를 초월해 하나로 나가자는 전통적인 통불교를 주장한 것”에 대해 “중도실상에 입각하면 회통이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가 원통무애한 모든 것을 종합지향한 것으로 마땅히 종파성을 지양한 원통불교를 이끌어내야 한다. 예부터 정통조사라고 하는 분들은
다 치우침이 없었다”고 통불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어 스님은 “깨달은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인가”에 대해 “우주의 대도(大道)로 들어가는 길은 따로 문이 없다(大道無門)”며 “인간이 보다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길에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우주의 삼라만상이 평등 무차별한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살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청화 스님은 통불교와 함께 염불선(念佛禪)을 강조했다. 그 중심 사상 중 하나를 스님이 설법한 ‘원통불법의 요체’ 중 하나인 ‘삼매(三昧)’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통해 알아본다.
이 설법은 스님의 스승인 금타 스님이 간추린 것을 다시 청화 스님이 보충 설명한 것이다. 스님은 “보리란 깨달음의 뜻으로 보리방편문은 깨달음의 한 방편”이라고 설명한 뒤 ‘무색중생’, ‘무정중생’, ‘유정중생’을 말한다. 무색중생(無色衆生)은 마음으로 일어나고 멸해지나 보이지 않는 생각과 관념 같은 것이다. 무정중생(無情衆生)은 눈으로 보이는 모든
삼라만상을 말한다. 유정중생(有情衆生)은 사람이나 동물 같은 중생을 뜻한다.
스님은 무색, 무정, 유정중생이 모두 부처의 화신으로 석가모니 부처와 우리 중생은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석가모니 부처는 깨달은 부처이고 중생은 깨닫지 못한 부처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체 중생의 상은 원래 셋이 아니라 하나요 합해서 하나의 실상으로 통해 관찰하면 하나의 부처인 아미타불로 회통(會通)된다고 한다.
또 스님은 “아미타불을 극락세계의 교주라 할 때도 뜻을 깊이 새겨 보면 극락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천지우주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가 바로 극락세계이며 다만 중생이 번뇌에 가리어 극락세계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깨닫기만 하면 바로 극락세계임을 설명해주며 극락세계란 죽어서 가는 저승의 세계만은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스님은 이어 “보리방편문 전 뜻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심즉시불
(心卽是佛)’ 곧, 마음이 바로 부처”라며 “마음이 부처임을 깨달아 ‘참 나’를 아는 것이 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라 갈파했다.
10년 전 1993년 11월4일 오전 7시30분(한국시간) 성철(性撤) 스님이 입적했다. 성철 스님은 1912년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나 법납 59세로 입적했다. 성철, 청화 두 스님은 가을 단풍과 함께 소풍을 가려는 듯 같은 11월에 사바세계를 떠났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란 법어를 남겼다. 또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박정희 대통령이 선승(禪僧)인 성철 스님을 만나고자 했으나 스님이 만나주지 않았다는 일화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성철 스님도 임종게를 남겼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산에 걸렸도다.” 두 스님 다 무소유와 바른 수행으로 모든 스님들의 ‘큰스님’으로 세상을 살았다. 두 스님이 남긴 임종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 싶다. 성철 스님의 “죄업”과 청화 스님의 “은혜”는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만 같다.
김명욱(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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