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수상자와 수상후보에 올랐던 여배우 등 수퍼스타들이 주연한 최근 영화들이 흥행서 잇달아 참패했다. 지난 달 개봉된 3편의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베로니카 게린’(Veronica Guerin)과 ‘인 더 컷’( In the Cut)및 ‘국경 넘어’(Beyond Borders).
‘엘리자베스’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후보에 올랐던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베로니카 게린(10월17일 개봉)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마약 밀매단을 폭로하다 갱에 의해 사살된 여기자 게린의 실화. ‘진주만’ 등 블럭버스터 전문의 제리 브루카이머가 제작하고 매끈한 연출 솜씨를 지닌 조엘 슈마커가 감독 한데다 연기파인 블란쳇이 주연, 기대가 컸던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비평가들의 엇갈린 평가를 받으며 나오자마자 흥행 궤적서 사라져버려 배급사인 터치스톤을 당황케 만들었다. 서스펜스와 스릴 그리고 힘찬 감정이 있는 영화로 블란쳇의 연기가 큰 칭찬을 받았으나 흥행에 참패하자 터치스톤은 개봉 한 달도 안 돼 신문광고조차 중단했다. 지난 11일까지의 총수입은 고작 151만달러.
이어 24일에 개봉된 ‘인 더 컷’은 ‘피아노’로 오스카 각본상(감독 겸)을 받은 제인 캠피언이 감독하고 변신을 시도한 멕 라이언이 젖가슴까지 노출하고 열연한 에로틱 스릴러. 화끈한 섹스와 살인 충동의 핏빛을 대조시키면서 고독과 욕정과 현대 도시인의 사랑의 불가능성을 파헤친 범죄영화다.
그러나 무드 하나는 진득진득하나 통속적인 작품. 이 영화도 비평가들의 엇갈린 반응을 받으면서 관객들이 외면, 지난 11일까지 달랑 393만달러 수입에 그쳤다. 제작사인 컬럼비아의 자회사 스크린 젬스는 개봉 전 큰 기대를 모으며 라이언의 연기가 오스카상 후보감이라는 말을 들었던 이 영화를 살려 보려고 몸부림치고 있으나 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영화와 같은 날 개봉한 ‘국경 넘어’는 오스카 조연상을 받은 앤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전쟁액션 로맨틱 드라마. 실제로 유엔 친선대사인 졸리가 난민구호사업 봉사자로 나와 세계도처의 분쟁지역을 다니며 좋은 일도 하고 사랑도 하는 내용. 졸리의 자화자찬 자기 선전용 영화로 비평가들의 혹독한 평을 받았고 관객들도 철저히 외면, 지난 11일까지의 수입은 427만달러. 배급사인 패라마운트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 역시 신문광고마저 중단했다.
이어 10월31일에 개봉된 ‘인간의 오점’은 얘기의 중심인물은 남자 교수(앤소니 합킨스)이지만 남자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의 상대역인 여자 청소부(니콜 키드만). 평생을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온 백색 피부의 교수가 자기 딸 뻘인 아름다운 여자청소부를 사랑하면서 진실을 고백하나 비극으로 끝이 나는 이야기다.
원작이 필립 로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인데다 오스카 수상자인 로버트 벤튼(’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이 감독하고 두 오스카 수상 배우가 주연, 사전 기대가 매우 컸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난 9월 토론토 영화제서 선을 보였을 때부터 시원찮은 반응을 받더니 개봉되면서 비평가들의 뜨뜻미지근한 평가를 받으며 지금 흥행서도 죽을 쓰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배우 선정이 잘못됐다는 비평가들의 공통된 지적을 받았다. 지난 11일까지의 수입은 217만달러인데 그런데도 배급사인 미라맥스는 오스카의 꿈을 못 버리고 수상시즌을 맞아 영화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영화들이 비평가들의 호응을 받았더라면 흥행이 이렇게 부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의 흥행 실패는 여배우 혼자 힘으로는 흥행의 문을 열기가 힘들다는 할리웃의 통설을 재확인 해준 셈이다. 할리웃에서 흥행의 문을 혼자 힘으로 열 수 있는 여배우는 아직까지는 줄리아 로버츠 한 명뿐이다. 그리고 ‘시카고’나 ‘미녀 3총사’ 같이 앙상블 캐스트일 경우 여자 혼자 뛰는 것보다 흥행 성공 가능성이 높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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