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헌정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끝내 국회를 통과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정치인은 물론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앞세우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 이유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구니 개혁이니 친노니 반노니 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이곳 미국에서도 있었다.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전체득표에서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경험해야 했다. 더군다나 당락의 열쇠가 되었던 플로리다 주에서 대법원의 해석에 따라 불과 몇 백 표 차이로 뒤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도 부시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이나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리잡고 있는 상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국의 현대사를 보면 오랜 시간동안 권력의 기득권을 누려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소외를 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소외를 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소외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이 원치 않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부류의 사람들이 권력을 잡는다 해도 이를 통해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상처가 심한 사람들은 상처가 한이 되어서 상대방이 권력을 잡아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좋아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그들의 상처를 키우는 결과가 된다.
이제는 무슨 무슨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치유의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같은 혼란과 분열이 계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섬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패거리 정치니 코드정치니 하는 것들은 절대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치유할 수 없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를 반대하고 싫어하는 사람들까지도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임지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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